▲ 이운모 교사/은평초등학교
교사로 일 한지,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퇴임을 앞 둔 교장선생님께서 '몇 학교를 돌았더니, 벌써 퇴임할 때가 됐다'고 하셨는데, 돌아보니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났다. 기쁘고, 보람 있는 일도 있지만, '내가 그 때는 왜 그랬지?'하며 후회하고 미안한 일도 많다. 그런 일들이 문득 생각나면, 부끄러워 어디에 숨고 싶고, 아이를 만나 당장 사과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4학년 담임을 할 때다. 처음에는 학생을 존중하겠다는 마음으로 존댓말도 쓰고, 아침 자습시간에는 관찰 그림도 그리면서, 하고자 하는 것들을 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잘 따라오다가 나중에는 싫증을 내고, 잘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충분한 이해도 구하지 않고, 너희들에게 좋으니까 해야 한다며 요구만 했다.

생활지도할 때도 모자란 면이 많았다. 어떤 남학생은 "선생님, 2학년 때 선생님은 제가 친구랑 싸우면 하지 못하게 말리고, 못하게 벌도 세웠어요. 선생님은 우리가 잘못해도 뭐라 하지도 않고…." 잘못이 있을 때, 어른으로서 따끔하게 혼내는 것 대신에, 뒤로 물러서며 규칙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사실은 아이들한테 가까이 가는 것을 피했다.

그러다가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감정에 따라 이럴 때는 저렇게 하고, 다른 때는 이렇게 하며, 일관성 없게 대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그런 나에게 믿음을 잃고, 대항하며, 자기주장을 했다. "선생님, 차별대우 하지 마세요.", "그걸 왜 해야 하는데요?" 그 중, 더욱 따지는 말을 하고, 지도를 따르지 않는 여학생에게는 "그렇게 말 안 듣고, 제 멋대로 하면, 부모님한테 말한다" 하면서 겁을 주고, 속으로는 미워하고, 겉으로는 무시를 했다. 학생들이 무언가 말을 하고 표현할 때, 잘 듣기 보다는 버릇없다고 여기며, 내 방식을 고집한 것이다. 그렇게 사이는 멀어졌고, 나와 학생들은 서로 힘든 시간을 지냈다. 학생들은 진급을 하고, 나는 다른 학년을 맡아 지도했다. 같은 학교에 있으면서, 그 여학생은 방과 후 활동으로 내가 있는 교실에 가끔 오기도 했다. 나한테 일부러 툴툴대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시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여학생이 나한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시도였는데, 그 때 나는 '그러면 그렇지. 하나도 안 변했구나!' 하면서 괘씸한 생각을 하고, 알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학교를 옮겼는데, 스승의 날 즈음해서 그 여학생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일요일에 시간 되세요?"
"그래, 영선(가명)아! 시간 돼지. 그래, 그 때 학교에서 보자. 연락 줘서 고마워."
뜻밖의 일이었다. '먼저 손을 내밀었구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약속한 날이 되어 학교에 갔더니, 운동장에 몇 몇 학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영선이는 나한테 카네이션과 편지를 주었다. '…성의 없이 쓴 거 같지만, 선생님 존경해요.'

나는 '서툴고, 어리석은 말과 행동이 많았는데, 무엇을 존경한다는 거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이유를 떠나서 이렇게 학생이 나를 인정해주니 고맙고, 옹졸하게 마음 쓴 게 미안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났고, 영선이가 가끔씩 떠올랐다. 영선이가 전화했던 일, 친구들과 함께 나를 반겨주던 모습, 마음을 표현한 선물과 편지, 그런 것들이 마음을 따듯하게 했는데,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뭐가 그런지 생각해 봤더니, 내가 영선이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말과 행동만 보고 판단하고 미워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사과를 하는 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여러 날을 미루다 전화 했다.

"영선아, 반갑다! 잘 지내니? 사실, 내가 너한테 사과하려고 전화 했어. 너를 잘 지도하고, 인정해 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어. 미안하다." "아니요, 선생님! 제가 미안해요!"

"어, 나한테 미안하다고? 그러면 너를 용서 할게. 너도 날 용서해 줄래?"
"네!." "그래, 고마워."

통화를 마치고, 마음이 참 가벼웠다. 나도 가벼웠지만, 영선이도 함께 마음이 가벼워진 걸 느꼈다. 이렇게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는 기회를 가진 게 참 감사했다. 영선이와 대화하며,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내 잘못을 생각하며 '어떻게 그럴 수 있니?' 하면서 책망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서툴고, 어리석은 말과 행동이 많았지만, 그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최선을 다했던 스스로를 인정하고, 용서한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게 사실은 나를 용서하는 일이었다! 사과하고 용서하는 삶의 마법을 자신과 소중한 인연에게 선물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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