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특허권과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시기.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친제한 〈정전〉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고귀하다.

단순히 교조의 언행만을 기록한 경전이 아닌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 일원상을 서두로 총서편·교의편·수행편의 체계화된 교리는 종교사적으로도 매우 희유한 자산이며, 교법의 모본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대다수의 종교들이 교조의 생애 이후 '결집(結集)'이란 과정을 거쳐 초기경전을 만든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불교사를 보면 결집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의 '함께 암송하는 것'을 의미한 '상기티(合誦, Samgiti)'에서 유래했다. 1차 결집은 붓다 입멸 후 마하가섭이 선출한 500여 명의 비구들에 의해 이뤄지며, 교법에 대해서는 아난(阿難)이, 계율에 대해서는 우바리(優波離)가 소리내어 외우면 비구들이 합송하는 형식을 취했다.

경전이 갖는 정통성의 가치를 누구보다 직시했던 소태산 대종사는 열반을 앞두고 서둘러 〈정전〉의 성편을 단행했다. 〈원불교대사전〉에 의하면 "창립 제1대2회를 마감하는 원기25년(1940) 9월부터 소태산은 송규, 송도성, 서대원, 이공주, 박장식에게 그간의 모든 초기교서들을 통일 수정하는 교서편수를 명했다"고 밝혀져 있다. 원기26년에는 이미 〈불교정전〉이 아닌 〈교전〉(묵사본)의 명칭으로 편집해 대종사의 친감이 끊임없이 이뤄졌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정전〉이 만들어지기까지 최초 교리서인 〈수양연구요론〉으로부터 〈육대요령〉, 〈삼대요령〉, 〈조선불교혁신론〉, 〈근행법〉 등 수많은 단계별 수정과 훈련의 여정을 거쳐 완정됐다는 사실이다.

원기 2세기를 여는 현 시점에서, 이러한 편수과정을 운운하는 것은 원불교의 본질적 힘은 〈정전〉에서 나옴을 다시금 인식하자는 뜻에서다.

최근 '개교 100년 정전연구회'가 자발적으로 발족돼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정전〉의 근원정신을 점검하고 시대에 맞는 해석의 지평을 열기 위해 재가출가 70여 명의 회원으로 일차 조직됐다. 이러한 노력이 각 지역별 정전연구회로 확산되길 희망한다.

다만 소태산 대종사가 친제한 〈정전〉의 원문을 바꾸자는 식의 접근은 조심스럽다. '원경(元經)'으로서의 가치를 살리자는 뜻이다. 이미 '통경(通經)'인 〈대종경〉과 〈정산종사법어〉 등을 통해 그 본의와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만큼, 더욱더 적실한 소태산의 본의와 실천적 가치, 그리고 교리 전반을 통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주석적 방식으로 창출해 내는 것이 100년성업 교화대불공의 실질적 결집운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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