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진리에 맡기니 든든합니다"
법문사경 9년째, 정기일기 기재
당하는 모든 일 기꺼이 받아들여

능소화, 베고니아, 바이올렛, 옥잠화, 채송화 등 200여종이 넘는 꽃과 나무가 싱싱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대구교당 도타원 노명수 교도(74·道陀圓 盧明秀) 집을 찾았다. 아파트 1층에 있는 그의 집 베란다와 거실에는 어항과 새장, 아기자기한 장신구가 보기 좋게 놓여있었다.

초등학교 교사와 유치원 원장으로 35년간 일해 온 그는 퇴직 후부터 오롯한 신앙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바쁜 일상 가운데 그 일 그 일을 잘하고, 맡은 일을 정성들여 해내는 무시선, 무처선 공부를 실천하고 있다. 그의 신앙생활은 친정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친정어머니가 거진출진 2좌위 고 이삼정화 교도입니다. 교단 일에 늘 앞장섰던 어머니는 많은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교당에 가면 토 달지 마라', '너 사는 수준에 맞춰 불사를 하라', '너는 귀로만 법문을 듣느냐', '어제 밥먹었다고 오늘 밥 안 먹냐', '교당의 주인역할을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언제나 스승을 깍듯이 받드는 것은 물론 신임교무를 교도들이 하대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가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이경순 교무,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정산종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스승이다. "정산종사님은 달 같은 얼굴, 뽀얀 피부, 갓난 아기가 자고 일어났을 때의 붉은 뺨이 그렇게 자애로울 수 없었습니다. 생불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원기93년부터 지금까지 9년간 법문사경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실천해왔다. 매일 1~2시간씩 적고, 일이 있는 날은 미리 적었다. 그러다보니 교전쓰기 노트는 38권째, 〈원불교전서〉는 11번째 적고 있다.

"2년제 동명마음공부대학을 졸업한 뒤 상인교당에서도 1년간 마음공부를 시행했습니다. 상시일기와 정기일기도 꾸준히 기재해 교무로부터 문답감정을 받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새벽기도는 물론 법동지의 각종 경조사에 빠짐없이 참석합니다."

그는 오전9시30분, 오후1시30분, 오후5시30분, 오후9시30분 등 하루에 4차례씩 1분선도 챙겨서 실행한다. 대구교당 여자4단 단장으로서 단장훈련 참석은 물론 성주성지 천일기도, 동명훈련원 천일기도 참석 등 교당 행사와 교단발전에 언제나 기운을 보태고 있다. 교단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평소에는 집안일을 알뜰히 살핀다. 맏며느리인 그는 집안의 각종 행사, 제사준비, 시어머니 챙기기 등 자신의 일은 친척이나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처리한다.

"힘든 일이지만 모든 것을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 여기고 받아들입니다. 사람으로서 결코 못 당해 낼 일은 없습니다. 진리부처님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니 항상 뒤가 든든합니다."

그에게 신앙이란 매일 눈뜨고 일어나서 밥을 먹고 살듯, 생활 그 자체다. 기도하고 교당 가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됐다. 그는 직장생활을 할 때도 무엇이든 노력해 인정을 많이 받았다. 결국 자신이 마음을 먹고하면 뭐든지 잘할 수 있다.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렇다. 그는 유치원 원장 근무 시절도 일주일이면 원생 200여 명의 이름을 다 외웠다. 그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면 '원장님이 자기 이름 알고 있다'고 기뻐했다.

"상대방이 자신의 거울입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듯 내가 한 말과 행동이 그대로 나에게 돌아옵니다. 생활 속에서 지금 만나는 사람, 남편이나 자녀에게 불공을 잘해야 합니다."

그는 결혼했을 때도 반찬 하는 것 등 살림에 능숙하지 못했지만, 연습하고 계속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시어머니로부터 살림솜씨를 인정받게 됐다. 그는 4~8살의 손자 3명을 기르느라 바쁜 며느리를 돕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손자 셋을 그의 집에 데려와 남편과 돌본다. 아들과 며느리가 최대한 쉬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배려하고 있다.

"시어머니도 젊은 시절 나에게 참 잘해줬습니다. 이제 남은 소망은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일원가정을 이루는 일입니다. 며느리도 시간이 흐르면 나의 마음을 알아주겠지요."

그는 올해부터 대구원음합창단장을 맡게 됐다. 살아오면서 크게 후회할 일도 크게 잘할 일도 없다는 그는 이번에도 이왕 맡은 일, 최선을 다해 단원들을 도울 생각이다. 그의 삶에서 어떻게 해야지 예상하고 하는 것은 없다. 미리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냥 당하는 일을 해내고 살아왔다. 남편이 병환으로 수술했을 때도, 아들이 다쳐서 장기입원을 했을 때도 그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가 할 일인 염불과 좌선, 기도만 조용히 실천해왔다.

"진리부처님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다 맡겨버립니다. 친청 어머니도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교당에서 기도하고 오면 되지, 방에서 기도하면 되지' 그렇게 모든 일을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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