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광덕 교무/통영교당
지난해 경남교구에 부임하여 호정위원장이란 직책을 맡게 됐다. 교구 교정지도를 호정위원을 중심으로 해 보자는 교구장의 지침따라 교정지도 반장이 되어 교당을 순회하며 교정지도를 하고 있다. 교당을 돌아보니 힘들어 하는 교당도 있고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는 교당도 있었으며 어떤 교당은 교화가 잘 이루어지다가 교당 내 갈등으로 출석수가 현저히 줄은 곳도 있었다.

그중에 어느 농촌교당을 점검하게 됐는데 교당에 도착하니 교무가 교도와 대문까지 나와서 맞이해 준다. 법신불전 참배를 올리고 준비된 자리에 앉으니 교도대표 두 분이 함께 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교정지도를 시작하면서 교도에게 인사말을 하게 했다. 교도는 "우리는 지금 행복합니다. 좋은 교무님을 보내 줘서 정말 좋습니다." 그러면서 교구와 총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무와 함께 교당 풀을 뽑고 7~8명 나오던 교당인데 15명이 출석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교무님이 얼마나 감사한줄 모른다'면서 함박꽃 같은 미소를 짓는다.

교무에게 물었다. '교정원 간부를 하다가 농촌교당 교무로 와서 어때요' 라고 물으니 일생 중 최고 행복한 순간이라고 한다. 전무출신을 하고 주로 기관에만 근무를 하다가 교화 현장에 와서 보니 교무로서의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대부분의 교당에서 보여졌으면 좋겠다. 교도는 교무에게 감사하고 교무도 교도에게 감사하고 서로 감사하니 얼굴에 미소가 흐르고, 서로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고 서로의 꿈을 이루어 주려고 노력을 하는 교당이 된다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행복은 도시에만 있는 것도 아니며 숫자에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를 공경하고 서로서로 배려를 하면서 사는 삶 속에 행복이 있지 않겠는가. 교당이 행복하면 교화는 그 가운데 있으리라 생각을 한다.

서로 원망하고 자기의 고집을 세우며 잘못을 탓하고 생색을 내려한다면 늘 불안하고 긴장하고 부담을 많이 가지게 된다. 긴장, 불안, 부담이 스트레스이고 그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자연 환경이나 사회 환경도 급변하고 가치관의 변화로 점차 적응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거기에다가 교당까지 편안하지 못하다면 어찌하겠는가.

서로 믿고 의지할 때 마음을 열어놓고 상담할 수 있을 것이며, 세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상시훈련장에 임하게 하는 교당이 본래 역할이지 않을까! 교무는 교도를 위해서 교도는 교무를 위해서 배려하는 교당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안 만덕산훈련원은 초기에는 만덕산 농원이라 했었다. 농원이 있는 동네에 교당이 있어야 한다고 만든 교당이 중길리 교당이다. 중길리는 산골이라 대부분 주민들이 논밭에 나가 일을 한다. 법회를 일요일에 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눈 오는 날이 휴일이요 비오는 날이 쉬는 날이기 때문에 일요일에는 모두가 밭에 나가 일을 한다.

중길리 교무는 법회를 저녁에 보기도 하고 비오는 날 열기도 한단다. 그리고 눈 오는 겨울철이 법을 전하는 제일 호기라고 한다. 중길리교당 교무는 어느 눈 오는 겨울에 동선(일주일 정기훈련)을 개설했다. 괘도에 가사를 적고 성가를 가르치는데 괘도를 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라는 것이다. 왜 안 볼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보니 글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삼학팔조 사은사요를 가르쳐도 예습과 복습이 어렵고 오직 교무의 말에 모든 것을 의지하면서 일주일 동선을 마쳤다. 목이 터져라 강의하고 성가 부르고 하다가 해제식 날 젊은 교도 한 분이 콜라를 한 병 사와서 '교무님 입맛 다시라'고 사왔다고 가져오더라는 것이다. 그걸 본 할머니 한 분이 그 찬 것을 선생님에게 그냥 드리면 어쩌냐고 부엌으로 가서 데워 오더라는 것이다. 그 때 교무의 눈에서는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렸다고 한다. 중길리에서 콜라 한 병을 사려면 1년 농사지은 콩 깨 등을 머리에 이고 20리를 걸어 장에 가서 팔고 콜라를 사와야 한다. 머리에 이고 왔을 그 정성을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힐 일이고, 자기들은 먹어본 적도 없는 콜라를 교무를 위해 사오고, 그것을 찬데 그냥 드리면 안 된다고 따뜻하게 덥혀온 콜라는 세상에는 없는 맛이었을 것 같다.

교무는 교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교도는 교무를 받드는 아름다운 문화가 교당마다 있으면 좋겠다. 서로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 멀리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법이 전해지는 교당에서부터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어찌 다행 이법 만나 이런 행복을 찾았던고, 그런 교당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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