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화 이야기

▲ 한화중 교무/하노이교당
'덜커덩 덜커덩…' 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 좁은 골목으로 난 창을 통해 들리는 낯선 소리가 잠을 깨운다.

베트남에 처음 도착해서 하노이 중심에 있는 대학가의 현지인 집에서 살았었는데, 이 때 매일 새벽잠을 깨우는 소리는 바로 수레 소리였다. 길거리의 목욕탕의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쌀국수 등을 먹는 모습은 베트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중 하나이다. 대학가의 수많은 길거리 마차들 그 이면에는 베트남 사람들의 부지런함과 근면함이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베트남의 공식 명칭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越南社會主義共和國)으로 수도는 하노이며, 최대 도시는 호찌민(구 사이공)시이다. 면적은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의 1.5배 정도이며 인구는 약 1억 명에 달한다. 베트남의 종교는 불교와 기독교(로마 카톨릭교회, 개신교)이며, 인구의 70% 이상이 불교를 신앙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대부분 소승불교인데 반해 베트남은 대승불교 국가이다. 문화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하노이 인근의 문화재나 절들에서 불교와 더불어 유교 도교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종교 활동은 종교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실용정책으로 제한적 종교 활동은 허용되고 있는데, 정부의 허가 없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불법이며, 집회는 사전 신고를 하여야 하고 선교는 불법이다.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1956년 대한민국과 베트남 공화국의 수교로 시작되었으며, 1975년 사이공 함락으로 단교하였으나, 1992년 재수교하였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인 13만 명이 넘어서고 있으며, 한국에도 베트남 결혼이민자들을 포함하여 거의 같은 수의 베트남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였을 때 베트남을 '사돈의 나라'라고 칭하였다. 한국에서 베트남 신부들의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듯이 베트남에서도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다문화 가정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베트남을 '이모의 나라'라고 더 친근하게 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베트남과의 인연은 베트남 교화에 대한 염원을 가진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강남교당의 박오진 교도가 라오스의 삼동스쿨을 지원하면서 베트남을 경유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서 원기96년에 베트남 교당 설립을 위한 기금을 국제부에 희사했다.

또한 부평교당의 이상현 교도가 원기97년 12월에 하노이교당 설립에 대한 교화계획서를 국제부에 제출함에 따라 원기98년 교역자가 파견됐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기84년 이상현 교도가 경영하는 '우성아이비'가 베트남에 진출함에 따라 이정무 교무의 발원으로 국제부와 함께 답사를 하고 교역자 파견 등을 추진하였으나 기연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15년이 지나서 교역자 파견이 이루어진 것이다.

낯선 것과의 조우는 나 자신을 좀 더 살피게 된다. 낯선 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

처음 베트남에 도착하여 대학교 어학원에서 베트남어를 배웠다. 그 당시 어학원에는 나를 포함하여 한국학생이 2명밖에 되지 않았다.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무더운 날씨, 먹으면 탈이 나는 음식들…. 그렇게 1년을 지나고서야 겨우 이제 여기서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원불교 교역자로 파견된 정체성은 늘 교화를 꿈꾸게 한다. '해외에서의 교화란 무엇인가'란 화두는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 교화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루지는 일이기에 먼저 불연이 깊은 인연을 만나기를 염원했다.

베트남 현지 상황에 맞는 교화 전략을 생각하면서 처음에는 한인사회를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하노이의 한인사회가 4만이 넘어서고 있으며, 한·베 다문화가정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먼저 한국과 베트남의 연결고리인 한·베다문화가정을 생각하게 됐다.

한베가족협회의 여성회장인 팜티느아씨를 만나게 되었고, 한베가족협회의 고문역할을 하는 등 한베가족들과의 유대를 형성해갔다. 또한 하노이 한인회에서 진행하는 문화강좌에서 한베가정의 베트남인 아내를 위한 한국어강의를 하는 등 봉사활동을 통하여 한인회와의 교류도 하게 된 기연이 되었다.

또한 처음 한인들이 없는 곳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같이 베트남어를 배우는 청년들이었다. 청년들은 원불교를 잘 모른다. 교화는 가까이 있는 인연부터 하자는 생각에 그들에게 중용을 공부하자고 권하였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