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건 교도/남대전교당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존 스타인벡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당시 고실업 사회의 참상을 '분노의 포도'라는 소설에 담았다. 풍요는 다만 소수의 지주들 몫일 뿐 이주민들은 노동착취에 시달려야만 했다.

자본주의의 암울한 그늘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춥고 배고프고 병들어 지친 채 실업자로 떠도는 서민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다.

요즘 지구촌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양극화 및 불평등현상은 이와 다르지 않다. '1대 99의 사회'로 지칭한 지 오래다. 영국이 얼마 전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다. 세계화-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다. 자유무역의 혜택이 일부 계층에만 몰리는 데 대한 반발이다. 저소득, 저학력, 단순 노동자 등 소외 계층의 분노가 극에 달한다. 포도송이처럼 송골송골 맺힌 분노가 여기저기서 분출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돌풍도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란 성격이 짙다.

우리나라 또한 소득, 취업, 교육, 문화, 여가에 이르기까지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금수저·흙수저 논쟁은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음을 방증해준다.'헬조선(지옥같은 한국)'이라고 한다. 팍팍한 삶을 한탄하는 징표가 수두룩하다.

비정규직 19세 청년노동자가 서울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사고는 그런 맥락에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례다. 그 청년은 컵라면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끼니를 때우곤 했다. 열악한 작업환경, 안전 관리 소홀이 빚어낸 예고된 참사이어서 더욱 안타깝다. 형형색색의 메모지(포스트잇)에 남긴 젊은층의 추모 문구를 보니 분노·공감의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서울메트로 구조조정 결과 퇴직자들이 하청업체로 옮겨가 고임금에다 막강한 특권을 차지했고 갑-을의 상하관계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다른 비정규직의 저임금과 위험노동으로 전가되면서 그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기업 또한 마찬가지다. 산업재해 사고 다발의 이면에는 성과 및 효율을 우선시하는 자본 만능의 풍토가 자리를 틀고 있다. 생명과 안전 따위는 소모품 취급을 받는 시대다.

제2의 세월호가 널려 있다. 한꺼번에 304명의 소중한 생명을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시키고도 우리 사회 도처에는 아직도 승자독식의 어두운 망령, 관피아들이 설친다. 정권 차원에서 비전문가를 낙하산으로 공기업이나 금융기관 가리지 않고 내려 보내는 바람에 빚어지는 폐해가 가관이다. 결국 거대 부실을 낳는 요인으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국민 혈세로 그들만의 잔치를 벌여주는 꼴이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신뢰관계가 깨진 건 크나큰 손실이다. 국가의 리더십 부재와 무능, 부패 가운데서 각종 편법과 불법이 넘쳐났으니 그럴 만하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국가시스템, 국가 개조 수준의 변혁을 그토록 다짐했건만 공수표에 그쳤다. 국가는 무얼 해야 하고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고, 개인 또한 어떻게 해야 할 건지 자각하는 듯했지만 그 결과는 늘 시원치 않다. 진실규명마저 더디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민심은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시대정신을 만들어 낸다. 정치권에 대한 엄중한 4·13 총선 민심은 지금 새로운 변화의 동기를 일단 이끌어 냈다. 여야를 막론하고 '양극화 해소'라는 의제를 한목소리로 내고 있다. 물론 내년 대선을 의식한 발언이긴 하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풀어갈 건가다.

일련의 이러한 동향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쌓인 적폐와 공업의 실상을 알아차리고 이에 대한 참회의 움직임이라면 그처럼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이나 종교계가 각각 자신의 영역에서 멍든 민심을 치유하고 보듬는 역할, 다시 말하면 고등정치 고등종교로서의 면모를 부단하게 모색해야 마땅하다. 대종사는 수신의 요법, 제가의 요법, 강자 약자 진화상 요법,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 등 최초법어를 통하여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의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

상생과 평화 그리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노력이다. 정신개벽의 목표지점이 여기에 있다. 원불교가 시대에 알맞게, 생활에 밀착되게, 일체대중이 신앙 수행하는 개혁 종교임을 표방한 만큼 사회 참여의 길은 실로 넓다.

지난날 상극의 시대를 접고 우리나라가 도덕의 부모국, 정신적 지도국으로 거듭 날수 있도록 일원의 법륜을 쉬지 않고 굴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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