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교전〉 말씀 구절마다
인생의 가치관 정립하는 지침돼
교도강연/ 서툰 엄마의 감정표현은
유무념 공부로 단련하다

▲ 강은성 교도/동수원교당
나는 결혼 7년차를 맞이한 5세·6세 사내아이를 둔 엄마다. 나는 결혼하자마자 원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다. 시댁이 독실한 원불교 교도가족이었지만 나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너무 힘들어 종교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뒤늦게 출가를 결심했다는 대학 동창과 얘기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종교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고, 원불교를 선택했다.

교당에 다니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아직 초보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배워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일요일 아침이면 벌떡 일어나 "교당 가는 날이에요. 빨리 일어나세요" 하고 우리 부부를 깨운다.

우리 아이들은 법회 시간에 청정주와 영주도 곧잘 외운다. 심지어 선 법회가 있는 날이면 교도들 사이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좌선을 따라한다. 우리 아이들이 교당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가는 것 같아 부모로서 참 뿌듯하다.

나에게 원불교가 새롭게 다가온 이유 중 하나가 마음공부다. 내 마음을 바라보고 매일 유무념 조목을 체크하면서 어제의 나와 다른 오늘의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도 참으로 뜻 깊은 시간이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하루에 단 5분이라도 나를 생각하고 바라보는 일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그렇게 매월 하나씩 유무념 조목으로 정해 실천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월에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를 유무념 삼았다. 육아를 하다보면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님에도 자꾸만 내 뜻대로 강요하고 꾸짖는 일이 발생한다. 나 역시 그랬다. 6살 큰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 대인관계에 대해 두려움이 많았다. 내가 교당활동을 통해 사회활동의 범위를 넓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도 큰아이 때문이었다.

큰아이는 연년생으로 태어난 동생을 위해 엄마와의 둘만의 시간을 항상 동생에서 양보했다. 그러서인지 다른 사람이 다가오는 것도 싫어하고, 어린이집에 가는 것도 싫어하고 심지어 이웃이나 친척집에 가는 것도 싫어했다. 나는 그런 아이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별나게 군다며 큰소리치며 겁을 주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큰아이는 더욱 더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에 힘들어했다. 외식하러 갔다가도 다 먹지 못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가뜩이나 힘든 육아가 큰아이로 인해 배 이상 힘들었다. 그러다 지난해 교당에 하는 부부단훈련에서 '감정코칭'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됐다. 육아의 잘못된 예를 강사가 설명하는데 그게 바로 나의 경우였다. 반성이 많이 됐다.

그 후로 나는 아이의 예민한 감정을 무조건 받아들여주고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나 먼저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아이는 어느덧 나의 표정과 말을 통해 "엄마 왜 화를 내? 입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 표정으로 말해. 나는 엄마가 화내면 속상해"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가끔 동생이 징징대며 떼를 쓸 때면 "울지 말고 말로 해"라고 다독여주기도 한다.

아이와의 소통이 점차 익어가면서 나는 다시 또 다른 유무념을 설정했다. '기다려 주는 부모 되기'이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편이다. 그런 나와 달리 남편은 성격이 느긋한데 아이들이 남편을 닮았다.

매일 아침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유치원,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려면 성격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을 재촉하게 되고 아이들은 끝내 울음을 터트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내 마음도 좋지 않다. 생각해 보면 요즘 부모들은 참으로 유별나게 아이들 교육에 올인한다. 나 역시 큰아이가 돌도 되기 전에 하루에 책을 30~40권씩 읽어주었다.

교사를 하다 보니 아이들을 우수한 인재로 키우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다행히 헛된 망상임을 깨닫고 지금은 과잉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교육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 영역은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지만 어느 영역은 느린 부분이 분명 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이들을 내 기준선에 놓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빨리 채우려고만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하나하나 채워가는 중이었다. 그것을 알고부터는 성급한 마음을 놓고 아이가 부모에게 기대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를 위해 나는 〈원불교교전〉을 읽기 시작했다. 사람은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게 삶이 흘러가거나 방향을 잃기 마련이다. 이럴 때 〈원불교교전〉은 우리에게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여전히 나는 서툰 엄마이고 감정표현보다 화가 앞서 아이를 다그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부족한 됨됨이를 유무념 공부를 통해 공부하면서 두 아들과 함께 성장해 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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