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선중 교무/수학휴무
"나에게 이런 병이 온 건 진리께서 큰 공부를 하라고 주는 거야. 내가 그동안 공부를 게을리 했더니 진리가 더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준 걸 나는 알아. 이럴 때일수록 더 무섭게 공부해야 해."

유방암 진단을 받고 7년이 지날 때까지도 주위의 동지, 교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외로운 사막에서 홀로 투병 생활을 했던 천타원 이명원 교무님. 그 긴 투병 생활을 아는 사람은 당신뿐이다. 지난해 12월20일 유방암 수술이 재발되어 폐로 전이가 되고, 폐에 물이 차는 증세가 심해져 갑자기 밸리 놀스리지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후에서야 우리는 교무님의 7년간의 외로운 투병생활을 알게 됐다. 그 긴 고통의 시간을 교무님은 진리에 의지했다. 교무님은 이 병은 당신이 영생을 통해 지은 업이라 공부할 기회라고 했다.

시절인연이었는지도 모른다. 교무님이 입원하던 날, 나는 겨울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았다. 근무지였던 밸리교당은 병원에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같은 서원을 가진 도반으로서 깊은 정을 확인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담박한 성품 가운데에서도 인정이 넘치고, 검소한 습관은 모든 일을 공을 위한 마음으로 돌렸다. 혼자서 오랜 투병생활을 했지만 결코 외로운 분이 아니란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항상 마음은 총부를 향하고 스승님을 그리워하며, 주위 도반을 먼저 생각하는 분이었다. 아픈 중에도 교화 열정은 쉬지 않았다.

교무님은 병원 음식이 맞지 않았다. 따뜻한 국과 밥이 나오면 좋겠는데, 빵이며 케이크 등이 나왔다. 나는 솜씨는 없지만 손수 만든 음식을 챙겨 병원으로 가져갔다. 그때면 교무님은 "뭣 하러 왔어! 바쁜데"라고 하면서 미안해했다. 그러면 나는 "천타원님, 사실은 병원에서 나오는 커피랑 팬케이크를 밖에서 사먹으려면 너무 비싸서 그게 먹고 싶어서 오는 거예요"라고 했다. "아 그래? 선중 교무가 좋아하는 것들이야?"라는 질문에 난 병원식단을 일일이 체크해 놓고 먹으러 올 거라고 말했다. 그때부터는 스승님은 마음 편하게 식사를 했다. 하루는 아침밥이 평소보다 빨리 나왔나보다. 교무님의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선중 교무, 밥 나왔어. 식으니까 빨리 와서 먹어!"라며 당신 식사보다 나에게 따뜻한 식사를 챙겨주려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당신의 아픔보다 항상 주위 사람들과 교당을 먼저 생각한 교무님은 검사 결과 폐에서 1.5리터의 물을 기계로 빼야 하는 위급한 상황을 맞았다. 그 원인은 교당에 찾아온 고양이를 돌보다 균이 옮겨서라고 했다. 그때에도 스승님은 자신의 몸보다 고양이를 먼저 걱정했다. 그 자비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간호사나 보조사들이 바뀔 때마다 당신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조금씩 챙겨주니, 간호사들이 말하길 "오랫동안 병원에 근무하면서 이렇게 아픈 환자가 자신보다 우리를 더 배려하고, 고마움을 표시해주는 분은 처음이다"고 할 정도였다. 회진을 도는 의사는 이 분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투병의 고통 속에서도 얼굴이 이렇게 편안하냐며, 교무님의 삶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물었다.

평소 인연에 대한 불공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만리가 멀다않고 달려온 원불교학과 시절 옛 도반이었던 이정인 님, 친구처럼 항상 옆에서 지켜준 L.A교당 조인선 교도의 지극 정성한 간호를 보면 알 수 있다. 교무님은 차량으로 이동할 때면 곧잘 노래를 불렀다. 가수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를 정도여서 아직도 그 목소리가 귓가에 선하다.

7월1일 방학을 하고 나는 다시 교무님이 있는 교당을 찾았다. 교무님은 "선중 교무 주려고 내가 된장찌개를 끓였어"라며 반겨주셨다. 그리고는 교무님 동생 이상천 교무님의 아들 정훈이가 커서 전무출신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니 무척 기쁘다고 했다. 또한 조카 정훈이를 실질적으로 돌봐주고 있는 변성묵 교무님에 대해 깊은 감사를 전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었다. 입원했을 때에도 한 번도 아프다는 내색을 안 하던 분이 "아파, 아파" 하고 작은 목소리로 통증을 호소할 때, 나는 알았다. 그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는 것을. 교무님은 마지막 물 한 모금으로 생명의 기운이 다할 때까지 맑은 정신을 놓지 않았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수도인은 어떤 마음을 챙겨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었다. "내일 오후에 보자"라는 마지막 약속을 남긴 채, 영모묘원에서 한 줌의 검은 재로 만난 스승님.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다시 한 번 교무님과의 잊을 수 없는 법정을 되새긴다. 그 숭고한 삶이 후진인 우리를 통해서 계속 이어지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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