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가〉 107장 심월송은 교단 최초로 견성인가를 받은 삼산 김기천 종사가 작사한 곡이다.
107장) 저 허공에 밝은 달은(心月頌)
김기천 작사 / 김희조 작곡

1. 저 허공에 밝은 달은 다만 한낱 원체로되
일천강에 당하오면 일천낱이 나타나고
나의 성품 밝은 맘도 또한 한낱 원체로되
일만경계 당하오면 일만 낱이 나타나네

2. 달 사랑는 벗님네야 강 밑에 잠긴 달은
참 달이 아니오니 허공달을 사랑하고
마음 찾는 주인공아 경계에 착된 마음
참마음이 아니오니 본성마음 찾아보소

3. 고요한밤 홀로앉아 이 마음을 관하올제
분별주착 딸치 않고 무심적적 들어가니
적적요요 본연한데 일각심월 원명하다
여보소 벗님네야 이 심월을 구경하소.

향내나는 전무출신

〈성가〉 107장 심월송은 삼산(三山) 김기천 교무가 지은 '심월(맘달)'의 전반부 내용이다. 삼산 종사는 출가 후 성리연마에 깊은 관심이 있어 정진했으며 부산 교화의 터전을 닦는데 주력하다 원기20년(1935)에 장티푸스에 걸려 46세를 일기로 열반에 들게 된다. 이에 대종사는 삼산 종사를 "일호의 사심과 퇴보가 없이 참으로 향내나는 전무출신을 한 공인이다"고 추모하며 통곡한다. 삼산 종사는 신흥리 장자산에 안치되고 7년 뒤 대종사 유해가 그 옆에 임시로 모셔진다.

'심월(맘달)'은 삼산 종사가 열반한 다음 해인 원기21년(1936년)에 〈회보〉 24호에 발표된 유고로 '교리송'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정산종사의 '원각가'와 함께 당시 교도들의 마음공부 길잡이였다. 삼산 종사는 39세에 교단 최초로 견성(見性)인가를 받은 인물로(성리품 22장), 이 심월(맘달)은 본래 성품을 달에 비유해 마음달을 찬탄하고 깨닫기를 노래한 것이다.

이 심월(心月)을 구경하소

〈성가〉 107장의 심월송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연상시키며, 〈대종경〉 천도품 5장의 '열반전후에 후생 길 인도하는 법설'에도 전개되어 있는, 하늘의 허공달과 강물에 비친 그림자 달의 긴장을 느끼게 한다. 성품이라 하는 것은 허공에 있는 달과 같이 참 달은 허공에 홀로 있건마는 그 그림자 달은 일천 강에 비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허공달이 상대가 끊어진 절대계라면 강물에 비친 달은 상대가 있는 현상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짜 달일까? 그림자 달에만 집착해 허공에 있는 참 달을 못 보는 것도 문제이고, 반대로 참 달이 비친 그 그림자 달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림자 달도 참 달의 나타남이기 때문이다.

절대계인 허공의 달도 보아야 하지만 현상계인 그림자 달을 버려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일천강에 비친 그림자 달을 버리면, 천도품 5장에서처럼 본연 청정한 성품(性體)에서 우주와 만물이 있어지고(性現) 변화되는(性變) 성품의 능동성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성가〉 107장의 심월송에서는 절대계인 허공달을 먼저 확실히 알자는 것이다. 허공달을 알아야 그 그림자 달도 허공달의 나타남이라는 것을, 현상계인 일천강의 달이 허공달이 비친 그림자 달이라는 것이 확연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삼산 종사는 "경계에 착(着)된 마음 참마음이 아니오니 본성마음 찾아보소"라고 권하고 있으며, "분별주착 딸치 않고 무심적적 들어가면" 깨어있는 마음달이 두렷이 밝게 둥근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노래하고 있다. 절대계인 참 달을 그대로 드러내서 현상계의 "일만 경계에 당해서 일만 낱이 나타나게" 하자는 것이다.

허공달의 입장에서는 일천 강에 비추되 그 그림자가 잠잠한 호수에 비추어지든 파도치는 풍랑에 비춰지든 달은 본래 그대로 참 달인 것이나 현상계의 그림자 달의 차원에는 평온한 달과 요동치는 달의 차이가 있게 된다. 그러니 먼저 각자의 내면의 파도를 없애서 참 달이 두렷이 밝게 드러나야 된다. 이런 절대계의 참 달이 먼저 드러나면 경계의 파도가 치는 그대로 비추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내면의 파도이지 바깥 파도가 아니다. 경계자체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대하는 우리 마음의 파도를 통제하려는 것으로, 내면의 파도가 잠잠할 때 슬픈 사람을 만나면 같이 슬퍼할 수 있고 기뻐하는 일에 같이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가〉 107장 심월송에서처럼 "일만경계 당하오면 일만 낱이 나타나네"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성품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성품이 드러나는 것이다. 삼산 종사는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여보소 벗님네야, 이 심월을 구경하소."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이다.

원음산책

〈성가〉 107장의 심월송의 반주를 듣노라면 씩씩하고 흥겨운 발걸음이 연상된다. 어떤 좋은 일이 있어 친구들과 함께 발맞추어 걸어가는 그런 행진곡풍이 느껴진다. 또한 어떤 일정한 리듬에 조금씩 변화를 주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야산의 굴곡을 오르내리는 소풍가는 즐거움이 있다. 어떤 박자를 앞당기는 느낌이랄까? 높지 않은 산에서 바위고개를 만났을 때 앞사람이 손을 잡아 끌어주는 그런 당겨주는 손맛도 느껴진다. 삼산 종사가 "여보소 벗님들아, 그림자 달에만 착(着)되지 말고 저 허공의 참 달을 보소" 하는 그 소리에 앞당겨지는 기분이며, 작곡자와 작사가의 마음(心月)이 서로 비춘 모습이리라.

〈성가〉 107장을 작곡한 김희조 선생은 한국 음악계에 큰 족적과 공로를 남긴 인물로, 창, 민요의 국악을 서양음악과 조화시켰고 행진곡과 뮤지컬 등을 한국화하는 데 지대한 공을 쌓은 작곡가이다. 〈성가〉 107장도 이런 그의 색깔이 묻어있다 할 것이며, 이 곡은 원기52년(1967) 정화사에 의해 성가로 제정됐다.
▲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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