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다. 눈처럼 꽃잎을 날려 축제를 즐겼던 벚꽃도, 여인의 모습으로 순수를 알렸던 목련도 이제는 무성해진 잎으로 그늘을 만들고 있다. 담장 밑의 대추나무는 아직도 앙상한 가지로 저 혼자 죽음에 빠져 있다. 그러나 계절은 벌써 여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비온 후의 들판은 푸름이 지나쳐 서러워온다. 집 뒤쪽으로 논과 밭을 바라보면 어머니와 함께 보릿고개를 넘었던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나의 대여섯 살 8월도 그랬다. 나는 감나무 그늘아래 내버려졌고 엄마는 하루 종일 운동장만한 밭을 매셨다. 참매미는 지겹게 울어댔고, 태양은 엄마의 머리 위에서 이글거렸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엄마의 몸은 강변의 돌처럼 달구어졌고 결국 엄마는 태양을 집어삼켰다. 지금도 엄마의 가슴 속에는 불덩이가 훨훨 타오르고 있다. 그 불덩이는 한이다.

유교사회의 구조적 억압 속에서 우리의 어머니들은 한을 쌓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 한을 비극으로 몰고 가지 않았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체념과 순응으로, 눈물과 통곡으로, 춤과 놀이의 신명으로 한을 풀어내면서 당신들의 삶 속으로 승화시켰다. 내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18살 꽃 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여든이 다된 지금까지 한 번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큰집 며느리로 사셨으니 그 고통이야 내가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그러나 어머니는 당신의 삶을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잘 모셨고, 조상 잘 받드셨고, 자식들 잘 키워내셨으니 어머니 스스로는 행복한 삶을 사신 것이다.

이제 영화로 돌아가서 임권택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보자. <씨받이>에서 씨받이 여인 옥녀는 자식을 빼앗긴 한을 감내하지 못하고 마을 어귀 고목나무에 목을 맨다. 그러나 다른 씨받이 여인들은 날마다 한을 쌓아가면서도 그 한을 삶속에서 풀어낸다. <서편제>에서 소리꾼 사내 유봉은 수양딸 송화의 득음을 보지 못한 채 한을 안고서 저 세상으로 떠난다. 그러나 송화는 이복동생을 만나 통곡 대신에 소리로서 그 동안의 한을 풀어 헤친다. 마침내 그녀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하여 그가 그토록 원했던 한을 넘어서는 소리로 득음의 경지에 이른다.

그렇다면 '살아가는 일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일이 영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던 임권택 감독은 어떤가. 마찬가지로 그도 <서편제>의 송화처럼 한을 승화하여 영화로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다. 그는 <서편제>에서 신드롬까지 가는, 당시에 한국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워 영화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졌고, 그의 98번째 영화 <취화선>으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여 자기예술의 완성을 알렸다.

5월은 축제의 계절이다. 그러나 5월은 잔인한 계절이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축제를 즐기고 있는 그 대학 캠퍼스에 1980년 5월에 계엄군이 주둔했었고, 그 계엄군에 쫓겨 도망가다가 쓰러진 하얀 깃의 교복을 입은 소녀가 누워있을 것만 같은 그 대학 뒷산 산기슭에는 지금,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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