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개발연구는 고향에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다"

▲ 김병욱 소장은 원불교가 통일 이전에 해야 할 사업으로 북한 바로 알기에 적극 나서 줄 것을 희망했다.
한국사회가 경북 성주군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연초 북한의 4차 핵실험 강행과 장거리 로켓 광명성 4호 발사로 촉발된 남북한 대치 상황, 남한은 개성공단 폐쇄로 맞섰다. 이로 인해 남북관계는 교류협력이 없는 제로(zero) 상태로, 어쩌면 사드 배치는 예견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 북한의 현실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는 사단법인 북한개발연구소 김병욱(54) 소장을 충무로 연구소에서 만났다.

그는 마침 탈북민들의 남한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하남시에 위치한 와다공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왔다. 2012년 하나원에서 탈북지식인 모임을 결성한 그는 이듬해 서울 신설동에서 탈북민 석·박사 학술동호회 결성을 주도했다. 2014년 사단법인 북한개발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한 연구소에는 탈북출신 석·박사 22명이 관여하고 있다.

- 북한개발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탈북민 스스로의 학문적 성장을 위한 사업과 외부 수탁을 받은 북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크게 보면 첫째는 공간정보에 기초 한 북한의 중소도시 개발연구, 둘째는 후배 탈북인의 학위논문작성 돕기 및 인재양성, 셋째는 탈북민과 남한출신 연구자들 사이의 공동 학술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탈북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남한에서의 적응을 돕는 멘토식 논문강좌를 운영하고 있고, 국내외 연구기관의 학술세미나 활동, 개발연구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인재양성은 국내외 개발연구기관 및 단체와 협력해 해외연수 프로그램, 북한개발 아카데미 강좌를 열어 후진을 양성 중이다. 북한지역에 있는 집터, 산소, 종교시설 및 문화재를 찾아주는 푯돌세우기 사업은 남한의 정부나 민간에서 관심이 많은 사업이다. 이는 공간정보자료를 통해 가능하다. 연고지역 탈북민들이 제공하는 최신자료에 근거해 북한지역 성묘, 집터, 교회, 종친묘, 고분 등의 위성좌표, 지번, 교통환경 등에 대한 공간정보를 구글 위성지도로 찾아내고 있다.

- 185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북한에는 시급 지역이 26개, 구역급 지역이 38개, 군급 지역이 147개로 행정구역이 합쳐서 185개다. '185 프로젝트'는 우리 북한개발연구소에서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탈북학자들의 출신지나 사회생활 시 연고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단기는 기초자료 수집 분석, 중장기는 각 지역별 창업, 부동산, 금융, 보건, 인적능력 등에 대한 개발 잠재력 재평가에 대해 연구하는 사업이다. 가령 평안도 순천시 인프라 실태를 조사해 통일 이후 어떻게 순천시를 모범적으로 개발할 것인가를 연구한다.

- 최근에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기획재정부의 연구과제를 수주받아 <공간정보 분석을 통한 무산군 민생인프라 개발전략>과 기독교에서 지원한 <한국 교회 부흥의 발원지 원산시 선교거점 구축에 관한 연구>, 천주교에서 발주한 <한반도 분단 이후 이북지역 천주교회의 시공간적 변화 연구-본당을 중심으로>, 그리고 <공간정보를 활용한 신의주시 인프라 실태조사>를 통일부로부터 받아 수행 중이다.

- 탈북이전과 남한에서 연구 활동은

탈북은 2002년에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함경도 청진시(도청 소재지) 도 인민위원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생산시설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서 지도원으로 6년 정도 근무했다. 이후 군수동원 분야에서 7년간 근무하다가 남한으로 내려왔다. 북한에서 근무하면서 얻었던 정보를 토대로 석사학위 '대북기술의 전승'과 박사학위 '북한의 민방위 시스템(전 인민적 방위) 연구'를 썼다. 박사학위 논문은 북한의 '318동원대'의 실체를 밝혀내 전쟁 시 북한의 군수 조달에 관한 사항과 민간에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업체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 김정은 정권 이후 탈북민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까 2009년 이전에는 한해 2000명이 넘게 남한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가 되면서 탈북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유는 북한의 경제가 이전 시대보다 더 나아졌고, 주민들이 탈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도 한몫 했다. 또한 한국으로 탈북했던 인민들이 재 입북하면서 남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하고 있다. 북한도 이를 활용해 세뇌교육을 강화했고, 남한의 자본주의가 좋은 것만 아니다는 의식이 퍼졌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경제가 남한에서 생각하는 것 만큼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1994년~1998년(고난의 행군)을 통해 식량난을 겪으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일명 장마당이라고 하는 시장을 활성화했고, 2003년부터는 농산품만으로 국한됐던 것을 장마당을 통해 공산품까지 팔 수 있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장마당이 종합시장이 된 것이다. 경제 성장은 못하지만 자급자족, 즉 자립경제 시스템으로 운영되면서 탈북민들이 늘지 않고 있다.

- 국제적인 대북제재에 북한의 대처는

북한은 핵개발에 따른 대북제재를 예견(김정은의 신년사)하고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사드의 남한 배치로 중국의 협조도 불투명한 상태다. 북한은 중국과 교역은 정상적인 거래 말고도, 밀수로 많은 부분을 대체해 왔다. 이번 대북제재 중 북한 인권 문제로 민생품에 관련한 것은 제외됐다. 즉 생필품(식품, 의류 등)이 제재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이것들이 북한 자체 내 종합시장을 통해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북한 주민들은 정부의 배급에 의해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교류하면서 필요한 것을 얻고 있다.

- 그렇다면 남한정부나 유엔의 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뜻인가

한국 정부는 국제적인 대북제재가 핵개발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면, 대북제재의 단기 효과는 별로 없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이런 제재를 가하게 되면 북한도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사드의 남한 배치가 확정되면서 중국의 대북제재는 느슨해 질 것으로 예상돼 중국의 도움없이는 제재의 효과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사드 배치가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협력적으로 변화시킬 소지가 많다.

- 구체적으로 북한개발론은 무엇인가

탈북민으로서 스스로 남북한 통일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민주화나 인권 해결 등으로만 바라보는 편견을 벗어나야 한다. 갑작스런 북한 붕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통일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이 필요한 데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남한 정부는 2011년에 화천군에 제2 하나원을 만들어 탈북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북한개발론은 '홍수 방지의 둑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홍수의 물줄기를 바꿔주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독일(동서독)의 통일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라. 그 과정을 살피면서 북한개발를 들어다 보고 있다.

우선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 놓은 산업지도를 검토하고, 그 다음에는 북한의 현재 모습을, 마지막으로는 연구자들이 미래연구에 중점을 두고, 지리 및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금은 도시별 기초 자료를 축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북한 도시의 특징은 모든 도시가 자립경제를 할 수 있도록 설계돼 비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을 갖고 있다. 도시 간 교류가 없는 사회 시스템이다. 나는 북한 투자 안내자 내지는 개발의 선두자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로 인해 핍박받은 고향 친지나 동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 내가 현재로써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거리라 생각하고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

- 원불교가 100주년을 맞았다

사실 남한에 살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원불교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남한 정착 초기에는 원불교가 운영하고 있는 한겨레중고등학교 등과 교류했다. 원불교는 민족종교로써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종교로 알고 있다. 북한에 있는 개성교당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더 중요한 것은 통일에 앞서 북한을 바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일 이전에 해야 하는 사업이 있고, 통일 이후에 추진해야 할 사업이 있다. 현재는 통일 이전이기 때문에 이에 맞는 과제를 교단 내에서 논의해 줬으면 좋겠다. 생색내기 위한 사업보다는 인식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 요청된다. 교단이나 교구, 교당에서 북한 관련 요청이 오면 우리 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자료들을 공유하고 싶다.

♠ 김병욱 소장은
평양에서 출생해 도인민정권기관에서 근무하다가 탈북했다. 2006년 경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2011년 동국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북한의 중소도시 개발 지구에 관심을 갖고 연구에 전력하고 있다. 현재는 (사) 북한개발연구소 소장으로, 동국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경일대학교 등 외래교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탈북박사 부부가 새롭게 쓴 논문작성법>이 있다. 국내 유일 탈북민 박사부부로 유명한 가운데 부인인 김영희 박사도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를 취득해 한국산업은행 통일사업부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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