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벤쿠버교당
사람마다 관심사가 있습니다. 어떤 관심사는 심신이 소진되는가 하면, 어떤 관심사는 마음이 열리고 진리에 대한 이해를 높여줍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승진, 안정된 직장생활, 마음에 맞는 인간관계, 효율적인 가사나 현명한 육아, 재테크, 운동, 건강, 아름다운 외모, 자기 개발, 신형 자동차 등등 사소한 물건에서부터 더 나은 관계와 행복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많은 것들이 산 넘어 산과 같아서 한 가지가 해결되면 또 다른 관심사가 등장하며 끊임이 없죠. 그야말로 '끝나지 않는 길'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모두 스쳐가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가며 애타게 구해왔고, 얻지 못하면 고통을 받아왔죠. 하지만 세상사 모든 것들이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갔으며, 구해서 얻어질 것이 있고, 구해도 얻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현상은 어떤 이치를 따르며, 그 이치를 깨닫게 되면 무엇을 구하든지 순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구하게 되며,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직면하며, 시시각각 일어나는 일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되죠.

그래서 불교와 원불교에서는 깨달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깨닫지 못한 상태로 살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실상이 아님을 자각하여, 존재와 현상의 실상을 제대로 깨달아 사실적이고 진리적인 삶을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우리는 과연 어떤 상태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내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며 '나를 본위로, 내가 경험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세상을 인식하죠. 허상을 보는 겁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바로 이 허상을 극복하고 실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죠.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이란 보던 그대로의 방식, 나를 본위로 보는 방식,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보는 방식으로는 얻기가 어렵습니다. 원불교에는 '지금까지 보던 방식, 생각하던 방식'을 타파하고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의두요목'이 있죠.

'진리를 깨치게 하는 중요한 몇 조목의 의심머리'라는 뜻으로 익숙하지 않고 쉽지 않은 질문을 통해, 진리의 깊은 세계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결국 존재와 현상의 실상을 깨닫게 이끌어주는 질문들입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러한 질문들을 진정으로 관심 갖고 의문하며 연마하고 연마하다 보면 진리의 세계로 다가가게 되죠.

예를 들면 '만법을 통하여다가 한 마음을 밝히라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부모에게 받기 전 몸은 그 어떠한 몸인가' '일체가 다 마음의 짓는 바라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마음이 곧 부처라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잘 수행하는 사람은 자성을 떠나지 않는다 하였으니 어떠한 것이 자성을 떠나지 않는 공부인가' '천지는 앎이 없으되 안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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