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진 교도/부산교당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가 교단과 재가출가 교도들이 익산이 아닌 수도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남은 여진을 어디에 쏟을 것인가?

이제는 공부 즉 신앙보다는 수행이다. 수행이 익어지면 신앙은 절로 따라 오는 것이라 신앙문과 수행문을 열어 놓으신 큰 뜻, 원불교의 원형을 찾아 여태껏 밖으로만 내달렸던 마음을 추스려야 할 때이다.

노대 종교와 다른 원불교만의 특성이 신앙과 수행이 함께 하는 것이다. 현재 원불교의 모습은 어떠한가? 왜 교화가 부진할까? 타 종교와의 차별화에 실패 한 것은 아닐까? 수행을 신앙이 가렸다고 생각한다.

기복신앙의 모습을 떨쳐내지 못한 채 공부길 밝혀가는 교도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작금의 우려스러운 원불교가 되어 버렸다.

공부와 사업이 병행되어야 하는데도 많은 교도들이 사업에 올인 하는 이유는 사업은 기한이 정해져 있지만 공부는 기한 없이 정진해야 하는 큰 차이, 그리고 공부의 성과가 사업에 비해 늦게 드러나며 공부가 사업에 비해 귀찮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본다.

공부는 음계의 인정을 위함이라면 사업은 양계의 인정을 위함인데 장엄이라든지 교화를 위한 이벤트성 행사 즉 안 이 비 설 신, 전5식을 통한 감각은 영혼의 울림이 적어 투자에 비해 소득이 적은 유실무실 오동실(有實無實梧桐實)이다.

운동역학을 응용하여 인간의 의식을 수치화 한 〈의식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는 일생을 통해 의식이 성장하는 폭은 5 정도라고 했다. 이 책에서는 주세성자를 1000으로 표시하고 있다.

수행을 통한 공부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가를 보여 주는 내용이지만 제대로 하는 공부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처방이라는 것은 우리 교전 곳곳에 이미 나와 있다. 이것만이 타종교와 차별화를 이루어 침체된 교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것이다.

〈대종경〉 제12 실시품 2장에서 "저 바위 속에 금이 든 줄을 알았거든 내가 먼저 채굴하여다가 그것을 광채 있게 쓰면 사람들이 나의 부유해진 연유를 알고자 하리니, 그 알고자 하는 마음의 정도를 보아서 그 내역을 말하여 준다면 그 사람들도 얼마나 감사히 그 금을 채굴하려 할 것인가." 또 〈대종경〉 전망품 6장에서 "세계가 금강산의 참 주인을 찾을 때에 우리가 여기 있다할 자격을 갖추기에 공을 쌓으라"고 말씀하시었다. 우리 스스로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공부하는 분위기를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교당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사업 하느라 교무님들이 무척 바쁘신 모습을 흔히 접하는데 학교에서 교육청 지시로 내려 온 공문처리에 바빠 수업준비 제대로 할 수 없는 학교 선생님들 모습이 떠올랐다. 일을 자꾸 벌릴 것이 아니라 일요법회를 충실히 할 수 있는, 공수래공수거 하지 않는 법회를 만들어야 한다.

어느 조직에서나 관리하는 입장에 서면 임기 중 치적 쌓기에 매달리기 쉬우며 이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면 엄청난 시간과 재물을 들여도 내실이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정산종사법어〉 경륜편 33장에 '명대실소 후무가관 최후승리 실력위상 (名大實小 後無可觀 最後勝利 實力爲上) '이라, 번역하면 '이름만 크고 실이 작으면 뒤에 가히 볼 것이 없고, 최후의 승리는 실력이 위니라'라고 말씀 하셨고 앞에서 언급한 책 〈의식혁명〉에서 저자는 표면의식에서는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도 인간의 깊은 잠재의식에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음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내면의 신성(神性)이 활성화 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기술 했다. 즉 후천개벽 시대가 열리고 있으며 지자본위의 시대가 실력을 갖추기를 요구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살고 있지 않는가. 더 이상 공부를 뒤로 미룰 여지가 없다.

공부길 잡아주는 법회가 제대로 살아나야 한다. 법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더 챙겨서 재미를 위한 이벤트성 사업에 밀려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교당법회가 법 잔치로 충실해야 하고 설법이 실생활에 와 닿아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이러하면 교도들의 신심과 신명은 자연스럽게 높아져 자녀들과 함께 하는 가족교화의 열매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과보응의 진리가 확연히 말 해 주는 것은 우리가 한 만큼 되돌려 주시는 점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밝혀주신 원불교의 원형을 다시금 확인하고 복원하여 원불교 교단부터 재가교도까지 〈교전〉을 통한 마음공부 잘하는 원불교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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