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 교수의 현대건축이야기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는 다양한 가치관을 담고 있는 마당들이 있어 시대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 조한 교수/홍익대학교 건축학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는 '마당'이 참 많다. 삼청동길 쪽에는 미술관의 앞마당 역할을 하는 '열린 마당'이 있고, 안쪽으로 들어오면 미술관 건물에 둘러싸여 야외 전시 공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미술관 마당'이 있다, 오랫동안 정독도서관 앞에 유배되어 있다. 다시 제자리를 찾은 종친부 건물 앞에는 '종친부 마당'이 있는가 하면, 북쪽의 북촌5길에 인접한 디지털 도서관 앞에는 '도서관 마당', 지하 전시 공간에 자연광을 끌어들여주는 '전시마당'과, 그 외에도 이름 붙여지지 않는 크고 작은 마당이 여기저기 많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한 건축가 민현준은 건물보다 마당의 위치를 먼저 잡았다고 한다. 서쪽으로는 경복궁과 함께 한양의 내산(內山) 중 하나인 인왕산, 북쪽과 동쪽으로는 또 다른 한양의 내산인 북악산과 그 기슭에 북촌한옥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부지 내에는 조선시대 국왕의 친척에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는 관청으로 서울시 유형문화제인 종친부(宗親府) 건물, 일제강점기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부속 의원으로 근대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며, 군사정권 당시 '공작 정치'의 본산으로 등록문화제이기도 한 옛 기무사 건물 등,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을 대변하는 건물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정치 역사 사회 예술적 관점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이곳에서, 또 다른 거창한 랜드마크를 통해 특정한 관점을 강요하기 보다는, 오히려 비워내어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관점을 중재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의도했다.

마당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로 충만한 공간이다. 우리의 옛집에서 마당이, 때로는 놀이터로, 잔치 공간으로, 추모의 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사용자의 능동적인 참여에 의해 새로운 의미와 용도가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잠재적 관계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마당은 미술관의 휴식 공간이자 전시 공간인 동시에, 주변 동네의 놀이터이자 공원이며 사회적 공간이다. 또한 특정한 역사적 해석이나 특정한 기능이 강요되는 수동적인 공간이 아니라, 관람자 스스로 자신만의 관점과 동선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장소인 것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부지 내에 있던 국군 서울지구 병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시신이 10.26 사건 직후 안치되었던 곳이고, 옛 기무사 건물은 당시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본관으로 대통령이 되는 전두환 사령관이 공포정치를 진두지휘하던 곳이다. 그렇게 이곳엔 파란만장했던 우리의 이야기들이 쌓여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후 카리스마 없어 미술관스럽지 않다느니, 비워진 마당들은 휑하니 버려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서울관의 진정한 중심은 '화이트 큐브'의 전시공간이 아니라, 비워진 마당이다. 특정한 가치관이나 해석에서 자유롭게 풀려난 마당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산업화시기, 군사정권시기를 넘나들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단지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위한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특정한 가치관을 강요하고 학습시키려 했던 수많은 구시대적 공간을 벗어난 새로운 시대를 위한 미술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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