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날만큼이나 뜨거운 공부심이 일어나고 있는 교도정기훈련 시간이다.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강조하며 취사력 분반활동을 마무리할쯤 50대 후반의 남자교도가 질문을 한다.

"요즘 시대는 저 같은 중년 남자들이 살기가 참 힘듭니다. 옛날에는 정답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답이 없어요. 이것이 정답이라고 하면 다들 싫어합니다. 정답만 배우고 살았는데 정답이 없다고 하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그 간절한 물음에 중년의 고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중년남자도 괴로워하는 구나. 해결하고 싶어 하는구나.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대종사의 은혜이다. 평생을 옳다고 여겨온 생각들이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답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경계를 대할 때 일어나는 마음들 중에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분별성과 주착심)으로 볼 수 있다. 이 고정관념은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학습된다. 예를 들면 남자는 사회적 지위나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부여받으며 여자는 자신보다는 자녀와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야 한다 등이다. 이렇듯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던 삶은 예전과 같이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인정해줘야 할 젊은 세대들은 또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시대에 필요한 가치관은 무엇일까?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마음의 가치관으로 사는 것이다. 그동안 학습됐던 모든 생각과 습관들을 멈추고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본래 마음 그대로 말이다.

이럴 때 정답을 없애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일원상을 지금 여기에서 내 마음을 가지고 묵상하는 것이다. "이 원상은 눈, 귀, 코, 입, 몸, 마음을 사용할 때에 쓰는 것이니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것이로다." 여섯 개의 원상을 그려보면 그 자리에서 일원상이 나타나 비춰준다. 법당에만 모셔져 있던 일원상이 우리의 몸 법당에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심불(心佛)로 모시게 된다.

대산종사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마음대중만 잡아지면 어디서나 마음을 길들일 수 있고 일하는 가운데 살아있는 선을 할 수 있다. 이 활선(活禪)이 단련됨으로써 생활이 곧 공부요 공부가 곧 생활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먹기만 하면 선약이라고 했나 보다.

'없고 없고 없어서 또한 없는 것이요. 있고 있고 있어서 또한 있는 것이니'

일상수행의 요법에서 밝혔듯이 심지는 원래 요란함과 어리석음과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진다고 하였으니, 경계를 당하여 원래의 마음을 대조해야 한다. 그러면 원래의 참마음인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마음이 될 것이다.

/국제마음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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