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벤쿠버교당
공부나 수행을 한다고 하면 대개 명상을 생각합니다. 명상 중요하죠. 그렇다고 하루 종일 앉아있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원불교의 수행은 삶 속에서 공부하고, 공부가 삶을 빛내는 그런 구조를 갖죠. 일상에서 일심을 양성하고, 사리를 연구하며, 정의를 실천하고 불의를 멈추는 실행의 공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원불교 마음공부 모습은 다양합니다. 조석으로 심고와 좌선, 기도나 염불 등으로 정신을 수양하는 모습, 낮 동안 가정이나 직장, 학교 등의 각자가 처한 곳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틈나는 대로 경전을 읽고 일과 이치 간에 의문점을 연마하거나 자신의 본래 성품을 들여다 보는 모습, 저녁에 고요히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쓰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 등이죠.

그렇게 매 순간을 깨어있는 마음으로 살게 되면 많은 자각과 깨달음이 생깁니다. 심신을 작용함에 있어 시비이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대소유무의 이치에 대한 지혜가 밝아지죠. 가끔 마음을 스치는 이러한 깨달음은 좋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깨달음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일기를 쓰게 되면 지혜를 단련하는데 큰 도움이 되죠.

'정기일기'라고 합니다. '당일의 작업 시간 수와 수입 지출과 심신 작용의 처리건과 감각(感覺) 감상(感想)을 기재시킴'이죠. 그 중에서도 '심신작용 처리건'과 '감각 감상'을 서술형식으로 기재하는 것은 일과 이치 간에 이해와 깨달음을 깊게 하는 좋은 방법이죠. 예를 들어 '심신작용 처리건' 기재의 대체는 이렇습니다.

"오늘 누군가가 나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듣고 보니 서운한 마음이 들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지금 앞에 있지도 않은 그 사람을 향해 마음속으로 계속 해명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무엇이 기분을 상하게 하나?' 오래 생각하다 보니, 몇 가지 결론을 얻었다. 그 사람 생각임을 인정하자. 누구나 자기 생각은 있는 법이니까. 말에 걸리지 말자. 말을 말 그대로 이해하자. 나의 의견으로만 생각하자. 직접 이야기 한다면 그 때 가서 만나서 해결하자.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자. 그것도 욕심 아닌가. 과연 나는 타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평가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자. 나를 포함하여 누구나 쉽게 범하는 과오가 아닌가. 내가 먼저 멈추어야겠구나. 타인으로부터 좋지 않은 말을 듣게 되면 상대가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서운해 할 일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저지르는 과오를 돌아보고 그러한 잘못을 고치는 공부의 기회로 삼으면 되겠구나."

이런 식이죠. 어떠한 경계로 인해 시비이해를 분석해보고, 앞으로 몸과 마음을 원만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연마하는 거죠. 감각감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치에 대한 깨달음이 있으면 단편적인 깨달음에 그치지 말고 일기를 통해 깊이 연마하는 거죠.

이렇게 지속적으로 깊이 연마하게 되면 듣거나 읽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지는 지혜가 문득 문득 열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체득의 순간이 오는 거죠. 그 깨달음이 바로 나의 깨달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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