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만 하면 다 이루어졌습니다"
위기 때마다 일천정성 기도로
진리, 스승, 내가 맥이 닿아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날, 대연교당 마당에 피어있는 설악초보다 더 화사한 모시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 입은 강인수(70·慈陀圓 姜仁守) 교도를 만났다. 최근에 이사를 해서 아직 집정리가 다 끝나지 않아 교당에서 만나게 되니 미안하다면서 살짝 웃는다. 오랜 세월 기도로 적공해온 흔적이 얼굴에 배어 평온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들은 이야기들은 결코 평온하지 않은 파란고해였다. 지나온 세월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기도의 위력'이라고 한다.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원불교 집안에 시집 와서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입교를 하고 교당을 따라다녔다.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냈던 시아주버니 김성진 교도의 은모 박덕수 교무와의 인연이 깊다. 결혼 후 만났던 여러 번의 위기를 기도로 극복하게 만들었던 신앙의 힘도 늘 뒤에서 지지해준 박덕수 교무에게서 나왔다.

"젊었을 때 남이 보면 미쳤다고 할 정도로 종교에 빠졌어요. 인천에서 부산으로 이사 오면서 대연교당을 찾게 됐지요. 딸이 어렸을 때 선천적으로 심장이 안 좋아서 자주 아팠습니다. 늘 딸을 업고 병원에 다니면서 버스 차창 밖으로 일원상이 어디 있나 찾을 정도였어요." 그 때 대연교당을 발견하고 법회 볼 때 〈성가〉 30장 교당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렇게 눈물이 났단다.

"한국에서는 수술할 수 없는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던 딸 때문에 기도를 참 많이 했지요. 아침 저녁으로 소복을 입고 기도했어요. 월초 3일 기도를 비롯해 100일 기도 등 기도라는 기도는 빠트리지 않고 했지요. 법신불 사은 전에 매달려 8년을 기도하니 응답이 온 거예요. 기적처럼 인연이 닿아 홍콩의 유명 교수가 한국에 직접 와 수술을 집도하면서 딸은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고 감사할 일이라고 말하는 그다.

"'이 마음 그늘질 때 불을 켜주고 허전할 때 외로울 때 힘을 얻는 곳', 이 성가가 참 좋았어요. 30세 때부터 '어머니 합창단'에 참여했고 부산원음합창단장을 하면서는 독일 세계합창올림픽대회에서 은메달 수상의 영광도 이끌었죠." 풍금치고 성가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그였기에 음악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그는 가족들의 병고와 인연이 깊은 듯하다. 남편 역시 크게 두 번을 앓았다. 결핵성 뇌막염으로 남편이 위독할 때도 일원상서원문의 기적을 체험했다.

"기도의 위력은 참회가 곁들여져야 합니다. 위독할 때 지성으로 기도해보면 참회가 절로 됩니다. 그냥 참회가 아니라 진참회가 필요합니다. 남편 몸에 손을 얹고 죽을 죄를 지었다고 진참회를 하고 일원상서원문을 독송했지요. 얼마나 절절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두 달 동안 병원에서 돗자리 깔아놓고 기도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남편이 살아나니 담당의사가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놀라더군요."

남편의 척추 수술도 큰 경계였다. 수술 경과가 좋았지만 뼈가 붙어야 했기에 전신 깁스를 해야 했는데 그해가 올해처럼 더웠단다. 그는 그 때의 기도 과정을 "용광로에 쇠를 녹이듯이 우리를 쇠불구덩이에 넣고 삼세업장을 녹였다"고 표현했다. 두 번의 큰 병고를 기도로 이겨낸 뒤 이 때 남편을 교화해야겠다 싶어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다 꺼내 놓았다.

"딸, 아들, 그리고 아픈 당신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했다고 진솔하게 이야기했지요. 그러자 남편은 나의 손을 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나도 그때는 참았던 눈물이 막 쏟아지더군요. 이후 남편은 나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어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교화단도 같은 단에 편성돼 공부하는 재미로 살고 있지요." 강온전략으로 남편 단원을 지혜롭게 이끌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며 밝게 웃는다.

큰 일을 겪고 나면 오히려 겸허해진다고 했던가. 그는 법신불 사은의 훈증, 인과의 이치를 체득했다고 전한다. "인과를 알고 나니 내가 고생한 것이 아니고 딸이 나 때문에 고생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건 내가 짓고 받는 것이구나. 그래서 불공을 대단히 열심히 했지요. 딸이 내 스승이었지요." 그의 말에서 삶이 신앙 자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7월에는 교당 근처로 이사를 했다. 교당에 자주 가고, 기도도 빠지고 싶지 않아서, 스승님의 정기가 서린 곳에서 살고 싶어서란다. 새벽 5시 좌선 기도, 6시 입시 기도까지 하고 집에 오면 남편과 함께 다시 가정기도를 하는 그다. 백중천도, 법인기도 기간인데 집이 교당 가까이 있으니 남편도 자연 참석하게 돼 기쁘다고 속내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의 서원을 물었다. "성불제중 제생의세입니다. 올해 계획은 교당 근처 지역주민 교화에 전력하는 겁니다. 여력이 있는 한 정성껏 불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교법을 알고,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교화할 수 있도록 법신불 사은께서 건강의 위력을 주시지 않을까요. 또 영생을 통해 이 교법으로 도반과 함께할 겁니다. 이 서원대로 살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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