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영 교도/하단교당
<원불교대사전>에 전무출신을 '출가교도로서 심신을 오로지 교단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헌신 봉공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 문장만으로 일반인은 전무출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전무출신은 원불교의 출가교역자를 말한다. 원불교는 불교를 개혁하면서 출가교역자에게 결혼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남자 교역자의 경우이고 아직도 여자 교역자에겐 하위법으로 결혼을 금하고 있다. 따라서 여자 교역자도 남자 교역자와 같이 결혼의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여전히 여자 교역자에겐 결혼이 금지되고 있다. 원불교 교역자, 특히 여자 교역자의 지원자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를 결혼을 금지하는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심신을 오로지 교단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헌신 봉공하는 것이란 어떤 행위를 말하는 것일까. 일을 하고서 보수를 받지 않는 것이다. 원불교 출가교역자는 이처럼 보수가 없다. 따라서 결혼하는 남자 교역자는 그 부인이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 불교에서 출가한 스님은 상가(승가·수행자 공동체)를 이루어 무소유로 살아간다. 그래서 보수가 없다고 해도 별 문제될 것은 없다. 그렇지만 원불교의 출가교역자처럼 수입 없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힘든다. 따라서 해가 갈수록 원불교의 출가교역자 희망자가 줄어들고 있다. 원불교에는 교역자를 양성하는 대학이 두 개 있는데 해마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영산선학대는 50명 정원에 2014년엔 신입생이 2명 등록했고 그 다음해는 5명이 등록했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대학구조개혁법'이 통과되면 그 날로 폐교될지도 모른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해마다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다. 대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3분의 1가량의 부실대학은 가까운 장래에 폐교되고 말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재앙으로 다가왔다. 다른 나라에서 수백년 걸쳐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된 반면 우리나라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육칠십년대 새마을운동과 함께 산아제한 정책으로 출산을 억제한 결과가 이제 다가온 것이다. 인구 학자들은 대한민국을 저출산 고령화로 지구상에서 최초로 사라질 나라로 지목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한 뒤 2차에 걸쳐 10년간 100조가 넘는 예산을 들여서 저출산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효과는 보잘 것 없다. 한 여성이 평생 출산하는 아기의 숫자를 합계 출산율이라고 한다. 합계 출산율이 2.1이면 인구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1.2 정도로 해마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2016년부터 시작하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브릿지2020'에는 저출산 극복과제로 늦어지는 결혼, 포기되는 임신, 출산, 일과 가정의 양립, 돌봄 교육의 네 가지를 해결과제로 내놓았다. 결혼한 원불교 교역자는 일과 가정 양립 사각지대의 표본이 되고 있다. 가장의 수입이 조금도 없는 전무출신 가정에서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에서는 임산부인 여자뿐만 아니라 그 남편에게도 여성과 똑같이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을 주어서 자녀의 보육을 돕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저출산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도 무보수의 전무출신 제도를 고집한다면 교단의 미래뿐만 아니라 나라의 앞날,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제 교단도 전무출신 제도를 혁신해서 세상의 희망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교역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함으로써 경제적 어려움 없이 교화사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의 경우, 대략 자신이 벌어들인 돈의 30% 정도를 보수로 받는다고 한다. 원불교 교역자도 교화 사업을 통한 수입의 일부를 보수로 지급하면 문제는 없다. 또 희망과 처지에 따라 교역자 외 다른 직업을 가짐으로써 교역과 직업을 양립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개인의 능력과 신심에 따라서 수입의 전부를 교단에 내 놓음으로써 정신, 육신, 물질을 온통 다 바친 교역자가 있다면 그를 전무출신의 명예로 인정해 주어 전무출신의 전통을 잇는 것도 좋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후 엿 장사, 숯장사, 간척공사로 자립경제를 이룩하고자 노력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불법 연구회로 회상을 공개하기 전에 먼저 저축조합으로 경제적 기초를 만들었다. 그 위에 종교로써 불법연구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원불교의 불교개혁 정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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