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용어

주착심은 마음이 어느 곳에 붙잡혀 있어 늘 거기에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이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주착심일까? 여기에 좋은 예화가 있다.

이청춘이 여쭙기를 "큰 도인도 애착심(愛着心)이 있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애착심이 있으면 도인이 아니니라." 청춘이 여쭙기를 "정산(鼎山)도 자녀를 사랑하오니 그것은 애착심이 아니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청춘은 감각 없는 목석을 도인이라 하겠도다. 애착이라 하는 것은 사랑에 끌리어 서로 멀리 떠나지를 못한다든지 갈려 있을 때에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자신 수도나 공사(公事)에 지장이 있게 됨을 이름이니 그는 그러한 일이 없나니라."(<대종경>수행품21)

주착심에 대해 공부하다보면 자칫 여기에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다.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화내는 것도 모두 잘못된 것처럼 선입견을 가지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감정들과 모습 속에는 한 마음에 주착되므로 일어나는 모습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을 모두 '주착됐다'고 색안경부터 끼고 바라보는 것은 올바른 일은 아니다.

소태산은 자녀 사랑 자체를 애착이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일임을 분명히 밝혔다. 소태산은 때로 잘못하는 제자(<대종경>실시품6) 혹은 게으른 사람(실시품43)에게는 크게 화를 내며 경책했고, 이동안이 열반하매(실시품33) 눈물도 흘렸다.

소태산은 "중생은 희·로·애·락에 끌려서 마음을 쓰므로 이로 인하여 자신이나 남이나 해를 많이 보고, (중략) 부처는 희·로·애·락을 노복같이 부려 쓰므로 이로 인하여 자신이나 남이나 이익을 많이 보나니라(<대종경>불지품8)"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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