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벤쿠버교당
생각할수록 종교의 가르침은 단순한 것 같습니다. '모든 악을 멈추고, 널리 선을 행하는 것'이죠.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수행을 통하든 결국 일상생활 속 실천의 핵심은 '개과천선, 즉 자신의 허물을 고치고 선을 실천하여 널리 대중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어떠합니까? 내 생각이나 감정, 이익이 중요하다 보니, 옳은 줄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고, 그른 줄 알면서도 우를 범하죠. 그렇게 산 세월이 많다보니, 나의 마음이지만 내 마음대로 못하고, 탐심과 어리석음에 끌려 해를 끼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죠.

참회라고 합니다.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침' 즉,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원불교에서는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개척하는 초보이며, 악도를 놓고 선도에 들어오는 초문'이라고 하죠. 사람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여 날로 선을 행하면 예전에 지은 업은 점점 사라지고 새로운 업은 다시 짓지 않아 삶이 점점 나아지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돈독한 수행인은 참회를 하지 않을 수 없죠.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서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어왔고, 짓고 있는 수많은 잘못들에 대한 각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일단 각성의 마음이 생기면, 참회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죠. 바로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입니다. 사참이라 하는 것은 진심으로 진리전이나, 그 일에 직접 관계된 당사자나 인연을 찾아가서 실질적으로 사과하고 참회를 하는 것이고, 이참이라 하는 것은 잘못을 저지르게 하는 우리들 마음의 근본 원인인 탐내는 마음, 화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등을 근원적으로 없애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일시적으로 한두 번 참회를 하고 반성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허물의 바탕에 깔려 있는 욕심이나 어리석음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또다시 어리석은 마음으로 과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 이참과 사참을 병행해야 합니다.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모든 잘못들을 깊이 참회하는 동시에 진리와 내 마음의 본성을 깨달아서 마음 바탕에 있는 욕심이나 어리석음, 화내는 마음을 없애나가는 거죠.

돌아보면, 정말 참회할 일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돌이킬 수 없이 후회스러운 일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달아나거나 회피하고 싶을 뿐, 직면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전심작악(前心作惡)은 구름이 해를 가린 것과 같고 후심기선(後心起善)은 밝은 불이 어둠을 파함과 같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의 잘못은 구름이 해를 가린 것과 같고 뒷날 다시 선을 행하는 것은 밝은 불이 어둠을 물리치는 것과 같다는 거죠. 희망이 생깁니다.

어떤 잘못이라도 마음 한 번 돌이켜 참회하고 선을 실천하기로 하면 어두운 방을 밝은 불이 비추듯 지난날의 모든 죄과를 덜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거죠.

구원이 밖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참회하는 마음, 참회하는 삶 속에서 이미 구원은 시작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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