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대정진기도 체험

▲ 박인광 교도/원불교청운회 수도권부회장
시작할 때는 결코 끝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10년이었다. 3654일 이라니! 지난 4월27일 10년 대정진기도 해제식 후 〈원불교신문〉에 어김없이 소개되는 기도 감상담. 글을 게재한 개개인 모두가 진리로부터 응답을 얻었다는 것을 믿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지금으로부터 97년 전에는 아홉 분 선진들께서 백지혈인의 성사를 나타내 보임으로써 이 회상의 성공이 이로부터 비롯됨을 증거하셨다. 아홉분의 무아봉공 사무여한의 정성에 천지신명이 백지에 혈인으로 나타내보임으로써 화답 해준 것이다. 훨씬 더 인지가 밝아진 지금에 와서는 이미 보여준 그 증거보다는 개개인에게 화답을 해주셨을 것이다. 아마도 신앙을 위주로 하는 이웃종교의 열혈 신자라면 "계시를 받았다"고 감동하여 마지않을 그런 화답들.

진리가 나를 향해 응해 주셨던 여러 가지 응답 중 겉으로 드러난 하나를 소개해 보자면, 몇백 명의 학생들을 깊은 바다 속에서 잠들게 만들었던 통한의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던 날. 긴급 뉴스를 듣고 있던 작은 아들은 "아빠 나 오늘 저 배 타고 출장 가려고 했는데 친구 전화 받고 취소 했어"라고 말했다.

연유를 들어 보니 출장 준비를 마쳤는데 전날 친구에게서 갑자기 "그 배 회사는 사고 이력이 있으니까 그 배 타지 말고 다음에 가라"고 전화가 왔단다. 느낌이 안 좋아서 그만 출장을 포기했다고 하였는데, 바로 지금 사고 뉴스가 나오는 그 배를 타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신 어머니가 손자에게 하는 말씀이 "니 아빠가 하루도 쉬지 않고 기도를 한 덕이다" 하셨다. 드러나지 않은 증거로는 10년간의 기도를 하며 대산종사의 기원문 결어와 교단 100주년 대적공실 법문을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외우고 다녔는데, 누구에게도 가르침 받은 적도 없건마는 언젠가부터는 대산종사께서 어떤 뜻으로 기원문 결어를 만드셨고, 어떤 내용으로 왜 우리 제자들에게 까마득히 먼 예전에 교단백주년 대적공실(자신성업 봉찬) 법문을 내려 주셨는지 알 것 같았다. 대산종사와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졌다.

길을 가다가, 차를 타고 가다가도 불현듯 대적공실 법문 내용이 환하게 알아차려지는 것을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다. 어느 날에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며 요금을 내기 위해 창문을 열고 항상 하던 대로 "수고하십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데도 하루 종일 작은 상자 같은 박스 안에서 지나가는 차량에서 내미는 돈이나 카드를 받으며 기계 같은 동작만 반복하던 직원은 인사를 받기는커녕 인상만 찌푸리고 있다. 내 마음속에서는 '손님이 인사를 건네는 데도 대답도 않다니 기분 나쁘네'하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고 지나가며 "수고하세요" 하며 큰 소리로 다시 인사하고 일부러 얼굴에 미소까지 보이며 톨게이트를 지나간 것은, 바로 순간 큰 소리로 "유위위무위 무상상고전" 하며 내 머릿속을 울리는 법문 소리를 들었고, 내 마음속에서는 그래! "유위위무위 무상상고전"이어야지 하는 응답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이 진리의 응답이고 보이지 않는 감응이라고 나는 믿는다. 10년의 기도와 적공을 통해 내면적으로도 진급하고 외적으로도 진급해 가는 것이야 말로 확실한 감응이 아니겠는가하고 나는 믿는다.

개인들로는 장하고도 장한 역사임에 분명하지만, 5만년의 대운을 열게 된 새 회상 원불교의 2세기를 시작하게 됐고, 사오백년 결복기의 문을 열게 될 이 시점에서 전 교단적으로 기운을 하나로 응집해 5만 대중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주를 향해 선언문을 발표하던 그런 기운! 그 함성으로 대한민국의 하늘뿐만 아니라 전 세계, 우주를 향해 하나 된 기도로 크게 떨쳐 울릴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청운회에서 원100성업회에 기념대회 때 10년 기도 봉고식이라도 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무산돼 아쉽기만 하다.

나의 원력이 약했구나! 나의 정성이 미약했구나. 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10년 기도를 마쳤다는 감상담을 올리기에는 교단에 스승님들께 송구스럽고, 10년을 함께 해준 전국의 모든 재가 단체 법동지들께도 부끄러움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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