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햇빛에 감사합니다
바람에 감사합니다
한 그루 보리수
한 송이 수련
한 마리 산노루에 깃든
불성에 감사합니다
초목과 산천
천지 부모에 감사합니다


눈에 보이진 않으나
참으로 면면한
당신과의 선한 인연
당신에 감사합니다
당신이 있어
대각 백 년
일원상 백 년
적공 백 년입니다
당신이 있어 우리가 있습니다

열 손가락 끝을 동그랗게 모으고
정좌하고 앉으면
거기 다시 온 몸을 감싸는
하나의 원
그 안에 오롯이 비어있는 충만함
소란하고 헛된 욕심들이
가라앉은 뒤
천천히 자리 잡는
일심 대자유
자성으로 돌아가는
원융의 시간에 감사합니다


소요 백 년의 역사를
고요 백 년으로
이끌어주셔 감사합니다


처처불상
오늘 내가 만나는 이들이
다 부처임을 알려주셔서
깊은 산중 천년 고찰 아니라
먼지 많은 세상에서
먼지를 떠나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터에서든 거리에서든 순간순간
적적성성의 시간에 들 수 있어
감사합니다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까지
당신이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인생의 가을을
당신과 함께 가고 있어 다행입니다


대각전의 그 종소리 들립니다
아직도 개벽의 시간입니다
이후 백 년도
마음개벽의 시간입니다
꽃무릇 가득 피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을 따라 기러기떼처럼 열을 지어
또 백 년의 하늘을
세세생생 날아갈 것입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 도종환 시인은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 '고두미 마을에서'로 등단한 뒤 〈접시꽃 당신〉 〈담쟁이〉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등 다수의 작품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기도 한 그는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원불교100주년을 맞아 〈원불교신문〉에 축시를 보내왔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