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의 힘

▲ 황풍년 편집장/전라도닷컴
"싸랑하는 남편이가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구렇치만 이제 나 울지 못해요. 우리 애기가 있어요. 잘 키워야 해요. 꼭…."

이제 스무 살을 갓 넘었을까. 무척 앳돼 보이는 캄보디아 새댁이 더듬더듬 말을 잇더니 울컥 치미는 설움을 쏟아낸다. 그의 어눌하고 갑갑하게 느껴지던 사연을 맘 졸이며 듣다가 기어이 따라 울고 말았다. 오직 남편 하나를 의지하고 따라온 이 '추운' 나라에서 난데없는 교통사고로 어린아이와 둘만 남겨진 기구한 운명이 가엽고 가여웠다.

몇 해 전 일이다. '이주민체험발표회'에서 주제넘게 심사위원석에 앉아 열아홉 명의 체험담을 들었는데, 내내 가슴이 저리고 뻐근했다.

'맵고 짠 김치를 억지로 먹어야 했던,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을 다섯 시간동안 헤매던, 정성들여 장만한 친정나라 음식을 내놓고 면박을 당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는 온갖 '고객서비스' 전화 때문에 애꿎게 남편을 의심하며 슬퍼했던, 택시기사와 다투고, 영문도 모르고 병원에서 퇴짜를 맞았던….'

베트남, 몽골, 캄보디아, 필리핀, 일본, 태국, 중국. 국적은 다르지만 한국문화와 부대끼는 형편은 비슷비슷했다. 공개적인 발표회에 나올 정도면 비교적 안정적인 정착을 한 경우라는데도 구구절절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고, 또 부끄럽기도 했다.

행사는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서 끝났다. 이리저리 마구 쏘다니며 왁자하게 떠들어대는 개구쟁이들을 달래가며, 응원 온 시댁 식구들 앞에서, 게다가 심사위원이라는 사람들이 빤히 쳐다보는데, 아무래도 어렵기만 한 한국말을 저마다 5분 안에 능숙하게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헌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농어촌에 이주한 외국인 여성들의 사연이 아주 낯설지 않았다.

"아조 에래서 시집왔제. 얼매나 일만 했는지 몰라. 시댁 어른들 병수발하고, 논으로 밭으로 밤낮 쏘댕기고, 남이 안하는 뒤치다꺼리 다 흐고, 남편 앞세우고는 오직 자식새끼들 믹이고 갈칠라고 죽기살기로…."

어쩌면 그렇게도 전라도 골골샅샅 주름투성이 할매들 이야기를 닮았는지….

억장이 무너지는 불행을 딛고 '우리 애기를 잘 키우겠노라'며 이를 앙다물던 캄보디아 새댁의 비장한 얼굴이 영락없는 우리네 엄니들 같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등수를 가려 상을 준다는 것이 참으로 염치없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 젊은 사람들이 외면하는 농어촌에서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가 되어 살아가는 모든 이주여성들에게 푸짐한 상을, 감사의 선물을 안겨주고 싶었다.

"이날 평상 메느리가 해준 음식을 두고 맛이 있네 없네 해보들 안 흐요. 기죽을까봐."
"말도 안 통흐고 물도 설고 낯도 선디 뭣을 알꺼시오? 그냥 애기다, 우리 딸이다 생각흐고 사요?"

시골마을을 다니다 보면 외국인 며느리를 둔 전라도 할매들의 말씀을 종종 듣는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멀고 먼 땅에서 온 이주여성들에게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다.

"그 애기가 누구를 보고 그 먼 디서 여그까지 왔겄냐? 니 하나 보라꼬 왔는디 니가 그랄 수가 있냐? 흐고 아들을 나무랬제. 지속으로는 신세가 얼매나 처량했을끄나 그것이 참말로 짠해서 내가 눈물이 납디다."

'부부싸움을 한 뒤 며느리를 두고 혼자 집에 온 아들을 호되게 꾸짖었다'는 할매의 이야기 속에는 지난 시절 남편의 얼굴도 모른 채 시집을 가야 했던 당신들의 처지를 돌이켜 동병상련이 담겨있기도 하는 것이다.

농어촌에 시집 온 이주여성들은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가고 빈집만 늘어나는 마을을 지키는 할매들과 같다. 공장, 공사판, 농장, 어선, 양식장 등등 수많은 작업장을 지키는 이주노동자들은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는 '누군가'가 되어 준 고마운 존재들이다. 모든 이주민들에게 연민을 넘어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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