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위는 인류가 편리라는 이름으로 소비한 이산회탄소가 쌓아올린 빚더미의 결과다. 그동안 누적된 이산화탄소는 탕감하기도 어렵거니와 갚을 생각도 없어보인다.
노트북을 챙겨 사무실 주변 카페로 향한다. 더위를 피해 카페로 몰려온 사람들은 저마다 커피한잔을 들고 책을 펴거나 노트북 또는 핸드폰을 켠다. 카페 안은 노트북족, 핸드폰족, 독서족, 수다족들로 가득하다. 늦게까지 혼자 남아 근무를 해야하는 밤,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에어컨은 물론 언감생심이다. 그렇다고 에어컨 없는 집에 일거리를 가지고 가봤자 소파에 몸을 던져 버릴 것이 분명하니 일을 마칠 수 있는 대안은 역시 카페다. 올여름 주말에도 카페나 식당 등은 홀로족부터 연인, 가족 등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용광로같이 달구어졌던 벌건 여름이 한풀 꺾이는 듯 하지만, 벌써 내년 여름이 걱정이다.

가정용 누진제 유죄

도시는 아스팔트와 자동차, 냉방기 등에서 뿜어대는 열기로 퇴로 없는 용광로다.
요금폭탄을 맞은 전기요금 고지서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은 애먼 온도계에 분노게이지를 높인다. '누진제라니… 누진제 때문이야… 누진제만 없으면….'

마치 올 여름 더위의 원인과 결과가 누진제인양 모든 누명은 누진제에게 덮어씌워진다. 누진제의 부당함을 청원하는 국민소송단이 발족하고, 누진제폐지 청원운동에는 10만명이상이 참여했다. 국회에서는 여야 국회의원에 의해 누진제개정안이 발의됐다.

가정용에만 부과하는 누진제의 부당함은 당연하다. 전력소비의 53%를 차지하는 산업용전기요금은 생산원가이하로 제공하면서 기껏해야 13%를 차지하는 가정용 전력소비에만 책임을 묻는 징벌적 누진제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환경단체에서도 누차 이야기해왔던 단골메뉴다.

그런데 요즘 이 누진제 논쟁이 불편하다.

테헤란 40도, 아부다비 37도에 이어 35~36도를 오르내리며 세계3위를 기록했던 사상초유의 더위에 맞설 대안이 가정용 누진세 완화였을까?

설마 누진세만 내리거나 완화하면 더위에서 놓여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전세계에 설치된 9억대의 에어컨에서 사용하는 냉매인 수소불화탄소((HFCs)는 지구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보다 1924배가 높다는 사실은 외써 외면하고 말것인가?
▲ 누진제의 부당함은 당연하지만, 누진세만 내린다고 더위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걸까.
CO2 빛더미

더위는 더 이상 단순한 기상현상이 아니다. 인류가 편리라는 이름으로 소비한 이산화탄소가 쌓아올린 빛더미의 결과이다. 그동안 누적된 이산화탄소는 탕감하기도 어렵거니와 갚을 생각도 없어 보인다. 2016년 상반기는 지구의 역대 온도 기록을 모두 경신했다. 미국 국립기후자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14개월 연속 기록경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어떤 달은 산업화 이전 평균치 보다 1도 이상 높은 고온에 달할 정도로 올해 기후변화 현상은 강력하다.

지난해 12월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총회에서 195개국이 도출한 합의는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온도를 1.5도 억제한다는 것이었다. 파리기후변화총회에 참여했던 한국 '기후여정2015'은 즉각 환영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후변화총회를 앞두고 당시 세계각국에서 제출한 이산화탄소 절감율이 2.7도를 넘었기 때문에 2도 합의도 어려울 것이라는 절망에 싸였던 터라, '탄소기반의 삶에서 자연에 기반한 삶으로 인류사회가 전환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총회 이후 실무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1도씨가 올라버렸다. 우리의 결정은 너무 늦었고, 너무 멀리 와버렸다.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15년 중 14년이 2000년대에 일어났다. 그런데 지금은 겨우 2016년이다. 지구는 너무 위험할 정도로 빠르게 달궈지고 있다.

얼마전 영국 레스터대학 연구진은 지구 대기 속 산소의 70%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생산하는데, 바닷물 온도가 섭씨 6도 오를 경우 식물성 플랑크톤이 멸종하고 대기 중 산소가 고갈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지구 온난화는 바닷물 수온을 상승시키며 일부 과학자들은 이미 2100년엔 바닷물 온도가 6도 오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연구를 진행한 페트로브스키 응용수학 교수는 "이런 재난을 당하면 지구 상 대부분의 생명체는 죽을 것이다"고 했다.

3살짜리 아이를 둔 젊은 엄마는 '우리 아이가 84세가 되는 해인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더위도 감당하기 힘든데 산소부족이라니….

지구환경만으로도 청년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낳기를 거부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어간다. 지구자원을 부모들이 펑펑 쓴 덕(?)에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숨조차 쉴 수 없는 더운 지구를 물려주는 나쁜 부모들이지구상에 너무나 많다.
▲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15년 중 14년이 2000년대에 일어났다. (사진=연합뉴스)
다시, 자연

요즘 한국전력공사는 표정관리가 힘들어 보인다. 한전은 전력수요 폭증으로 전기판매량이 늘어나 11조원이라는 사상초유의 흑자를 봤다. 또한 전력예비율 감소로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심리적 지지를 얻게 됐으니, '더위'에 감사해 하지 않을까?

그러나 폭염의 행진속에서도 전력예비율은 한낮에도 7~9%를 유지한다. 심지어 전력부족에 대비해 지어놓은 천연가스발전소 운행율은 0%로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해주지 않으면 이미 부도가 나고도 남았다. 〈2015원자력발전백서〉에 따르면 보조전력인 천연가스발전소가 핵발전소보다 6026메가와트나 더 많다. 남는 천연가스발전소 용량이 핵발전소 6기에 해당한다. 천연가스발전소가 놀고 있을 만큼 대한민국 전력생산설비는 차고 넘친다. 혹시라도 전력피크가 오면 멈춰있는 천연가스발전소를 켜고, 화석연료에 비해 덜 위험한 태양, 풍력발전소를 만들어 돌리면 되는데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를 계속 짓겠다고 한다.

정부는 올여름 선심 쓰듯 누진세 한시적 완화를 발표했다. 세계 탄소배출 7위, 탄소배출증가속도 1위의 불명예에 오른 나라의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태도이다. 다른 나라들이 탄소배출을 1인당 평균 7.2%로 줄일 때 우리는 110.8% 늘리는 역주행을 해왔다.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라는 국제단체가 발표한 '2016년 지구용량 초과의 날'은 8월8일이었다. 지구용량 초과의 날은 지구 일년치 자원을 어느 시점에서 다 써 버리는지를 측정하는 것인데 지난해는 8월13일이었다. 1년만에 5일이 당겨졌다. 2016년 8월9일부터 12월31일까지는 지구자원 마이너스 시대를 살아야 한다. 아이들이 사용해야 할 미래 지구자원을 담보로 오늘을 소비하고 있다. 한국인들처럼 살려면 지구 3.3개가 필요하다.

부당하고 불평등한 누진제 개선과 더불어 도시곳곳에 나무를 심고, 빗물을 모아 다시 지구로 돌리는 등 지구온도를 낯추기 위한 제도와 정책은 도시중심의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일까?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고 불과 며칠전까지 우리 일상을 지배했던 더위의 경고를 잊지 않을지 걱정이다. 오늘도 천지자연에 부끄럽고, 두려운 하루가 흐른다.
▲ 이태은 교도/원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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