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자의 삶
어린이여름학교, 원불교 첫인연
부인의 합력으로 출가하게 돼

▲ 권덕천 덕무/영산식품
처음 원불교를 만나게 된 건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그 당시 여름이었는데 동네에 있었던 교당에서 마침 여름학교를 운영했다. 그 때 나는 친한 친구 따라서 여름학교에 함께 갔다. 3박4일 동안 다른 여러 친구들과 정말 재미있게 지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정식으로 교당을 다닌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다. 처음 원불교와 인연이 된 여름학교의 재미를 잊지 못해 교당을 계속다니게 됐다. 나는 매주마다 어린이법회에 계속 다녔고, 욱타원 박영화 교무님 연원으로 원기66년에 입교하게 됐다.

여름학교를 다니고 재밌게 어린이법회를 다녔던 곳은 삼성교당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다닐때도 나는 학생법회를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당시 학생법회에는 평균 40~50명 학생들이 참석했고, 나는 학생회장도 맡았다.

삼성교당은 작은 시골 교당이었지만 교구에서 열리는 각종 체육대회나 교리퀴즈대회에서는 삼성교당 학생회가 상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어린이 여름학교와 학생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됐다. 그러한 추억가운데에 조종현 교무님이 있었다.

나는 원불교에 와서 인생의 스승 세 분을 만났다고 자부한다. 바로 조종현 교무님이 그 중 한 분이다.

어린이와 학생 때 정말 재밌고 친근하게 대해 준 분이었다. 어찌보면 어릴 때 나의 인성에 큰 영향을 주었고, 지금 이렇게 출가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교무님의 지대한 영향 덕분이라 생각한다.

사실 출가를 고등학교 졸업을 마치고 하려고 했다. 조종현 교무님도 나에게 많은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집안의 장손이다 보니 출가가 쉽지 않았다. 교학과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조 교무님과 인연은 계속됐다. 입대해서도 편지를 주고 받았고, 제대후에는 교무님이 울산교당에 근무해 직접 찾아뵙기도 했다. 지금도 계속 찾아뵙고 있다.

군대를 다녀온 후로는 삼성교당 청년법회를 다녔다. 이때도 정말 재미있는 시절이었다. 아내는 종교를 갖지 않았는데 결혼하기 전에 함께 청년법회에 참석하곤 했다. 결혼 후에는 아내도 교도로서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데 결혼 후에 교당법회에 대해 개인적으로 애매한 시기였다. 결혼을 했기에 청년법회를 다닐 수 없었고, 일반법회를 다녀야 했는데 청년회처럼 신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같은 동네에 사는 친한 형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때가 궁동교당이 막 창립할 시기였다. 형님은 궁동교당에 함께 다니자고 했다. 친한 형님 부탁이라 믿고 다니기로 했다.

궁동교당에서도 정말 재밌게 지냈다. 교화 삼총사로 불릴 정도로 거기서 만난 형님들과 손발이 잘 맞았고, 교화의 새바람도 일으켰다. 그러다가 원기93년 중앙교구 유지재단이 처음 만들어지면서 지인의 추천으로 유지재단 담당직원으로 일을 하게 됐다. 그때 중앙교구장으로 고원선 교무님이 근무할 때이다. 교구장님은 나에게 직원으로 일할 바에는 차라리 출가를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 말씀을 듣고 걱정이 들었다. 옛날 같으면 바로 '예! 알겠습니다'하고 곧바로 말씀을 받들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가정을 가진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가만히 물어봤다. 아내도 한참 생각하다가 한번 해보자고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박중훈 교무님을 추천교무로 정해 출가하게 됐고, 중앙교구 유지재단에서 4년을 예비덕무로 근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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