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가〉 조그마한 우주선에는 광대한 대양을 묵묵히 나아가는 묵직함과 온 우주를 다 감싸안은 호탕하고 비장한 마음이 겹쳐 묘한 여운을 준다.
111장) 조그마한 우주선에(沙工)
김대거 작사 / 나운영 작곡

조그마한 우주선에 이 한 몸 태우고서
다북찬 호연대기 노 삼아 저어가니
아마도 방외유객(方外遊客)은 나뿐인가 하노라

다북찬 호연대기

〈성가〉 111장 '사공'은 대산 김대거 종사가 원기23년(1938), 〈회보〉 47호에 발표한 시조풍의 시이다. 당시 25세의 눈 푸른 청년으로 전체적인 시 분위기가 대산종사의 기상과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대산(大山)이란 호(號)처럼 넓고 큰 심법을 표현하고 있으며, 크게 들어올린다는 대거(大擧)라는 법명처럼 온 우주를 노니면서 큰 사업을 개척할 기운이 꿈틀거리는 정중동(靜中動)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

대산은 대종사의 시봉제자로서 도가에서 참으로 위태로운 관문이라는 중근의 고비를 뛰어넘기 위해 무섭게 적공하였다. 폐결핵을 앓는 동지를 간호하다가 자신이 감염되었으나, 병환 중에도 병을 통해 수행하였으며 특히 마음을 크게 소요하며 득력하는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정산종사의 뒤를 이어 종법사로서 교단을 이끌어 갈 때도 언제나 자연과 함께한 모습은 수도인의 멋을 보여준 표본이었고, 가난을 단순미로 승화시키고 상하좌우를 다 친근하게 하는 화합의 지도자상을 보였다.

대산의 시에서는 이런 부족하고 불편한 환경 속에서도 어디에도 걸림 없는 크고 자유로운 호탕한 모습이 담겨 있다. 8·15광복을 맞이한 격변기에 서울출장소장으로 한남동에 머무르며 김구·이승만 선생 등과 교류하면서도 그 각박한 살림 속에서도 천하의 주인 같은 살림을 경영하였다. 병석에 눕게 되어도 약초를 캐며 한가로운 마음을 키우는 그 드넓고 여유로운 마음은 가히 마음공부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공'의 노랫말은 이런 일련의 대산종사의 심법을 관통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방외유객은 나뿐인가 하노라

'우주선'이라 함은 인생이란 우주를 항해하는 삶의 배를 말한다. 우주선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자리와 역할이며, 이런 역할을 맡으면서 자신의 육근을 호연대기로 작용해서 이 세상을 저어가자는 메타포(은유)이다.

방외유객의 방(方)은 어떤 한계가 있는, 규정된 세상이다. 방외(方外)는 이런 상대적 세계에서 상대를 초월한 절대의 경지를 체득했다는 것이며, 유객(遊客)은 이런 상대를 여윈 절대의 심정으로 현상계를 노닐겠다는 의지이다.

방외유객(方外遊客)의 방(方)은 자기가 속한 소속이요 위치라 볼 수 있다. 내가 어디에 소속되었다고 해서 그 소속에 매몰되어서도 안 되고 어느 위치에 있다 해서 그 위치가 자기의 정체성으로 굳어져서도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래마음에는 이런 소속과 위치가 본래 없기 때문이다.

유객(遊客)은 여행하는 손님으로 여행하는 손님은 자기 집이 없다. 내 것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곳이 내 집이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기도 한 것이다. 대산종사는 〈성가〉 138장에서 "나 없으매 큰 나 드러나고 내집 없으매 천하가 내집이라"고 노래한다. 만나는 사람이 가족이며 도달한 곳이 자신의 집이 된다는 것이다.

'다북'은 '풍부하게 가득' 정도의 사투리이며, '방외유객'은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노니는 경지로 출가위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호연대기의 호연(浩然)은 물이 세차게 흐르는 모양으로, 〈맹자(孟子)〉 공손추상에서 온 뜻이다. 맹자의 설명에 따르면 호연지기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정기로써, 도의(道義)에 근거를 두고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 마음이며 공명정대(公明正大)하여 조금도 부끄럼 없는 용기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잡다한 일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마음으로까지 확대된다.

그러나 대산의 호연대기는 맹자의 호연지기보다는 소태산 대종사의 일원대도에 근거를 둔 기운으로, 맹자의 도의적 용기의 의미와 천지의 넓고 광대한 호탕한 기운을 체받는 데까지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사공>의 호연대기는 바로 〈정전〉 천지보은의 조목의 '천지의 광대무량한 도'와 부합된다. 대산종사는 "호연지기란 천하를 막힘없이 툭 트고 온통 감싸는 기운으로, 이 기운이라야 원망하고 해하려는 마음과 막히고 구애된 기운을 다 털어 버리고 온 인류와 일체중생을 감싸주게 될 것"이라 부연하고 있다.(〈대산종사법문〉2집)

호연대기는 산 정상의 툭 뜨인 조망처럼 광대무량한 열린 안목이요 기운이며, 답답하고 꽉막힌 좁은 마음에서 여유롭고 멀리 보는 너른 마음을 여는 것이다.

〈대산종사법문〉 5집, '여래장'에는 '호연대기'를 '일원대기'로 표기하고 있다. 호연대기는 일원대기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며, 대산종사는 이 일원대기를 십정기로 부연한다.

"너희들은 일원상서원문을 많이 봉독하라. 왜 그러냐 하면 대원정기, 일원정기 등 십정기 즉 원기(元氣), 정기(正氣), 정일지기(精一之氣), 호연지기(浩然之氣), 도기(道氣), 중기(中氣), 영기(靈氣), 진기(眞氣), 지기(至氣), 대원기(大圓氣)로 기질화시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그렇게 해야 한다."(원기78년 대산종사법문) 호연대기를 열 가지 정기로 풀어준 것이다.

원음산책

〈성가〉 111장 '사공'의 반주를 듣노라면 광대한 대양을 묵묵히 나아가는 묵직함과 온 우주를 다 감싸 안는 호탕한 마음과 비장함이 겹치는 기분이 든다. 어디에도 걸림 없으면서도 어디서나 주인이 되는 자신감이 응해진다. 이 묵직한 비장함과 호탕함이 묘한 여운을 주며, 반주는 부드러우나 심상은 자신감이 가득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느낌으로 이끌어 준다.

악보에 '장엄하고 흥겁게' 부르라 표기되어 있는데, 장엄함은 마치 광활한 대양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비장함이라면, 흥겨움은 여행하는 기분이면서 자유롭게 소요하는 드넓은 경지를 이름한 듯하다.

〈성가〉 111장 '사공'은 나운영 작곡으로 원기52년(1967) 정화사에서 성가로 제정됐다.
▲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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