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물 드리는 햇볕에 / 눈 맞추어 / 두었던 눈썹
고향 떠나 올 때 / 가슴에 끄리고 왔던 눈썹
열두 자루 비수 밑에 / 숨기어서 / 살던 눈썹
비수들 다 녹슬어 / 시궁창에 / 버리던 날
삼시 세끼 굶은 날에 / 역력하던 / 너의 눈썹
안심찮아 / 먼 산 바위 / 박아 넣어 두었더니
달아 달아 밝은 달아 / 추석이라 / 밝은 달아

너 어느 골방에서 / 한잠도 안자고 앉았다가 / 그 눈썹 꺼내 들고 / 기왓장 넘어 오는고

'추석'- 서정주(徐廷柱 1915-2000 시인)

이 시는 추석날 밤에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면서 사랑과 그리움, 결단과 아쉬움의 감정을 회상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초승달이 성숙하여 보름달이 되듯 눈썹은 예쁜 여인만이 아니라 완성을 향하는 온갖 애틋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추석에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한숨짓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고은은 '성묘'에서 이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장수 아버지를 회상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 모든 남북의 마을 다니시면서 / 하얀 소금을 한 되씩 팔았습니다 / 때로는 서도 노래도 흥얼거리고 / 꽃 피는 남쪽에서는 남쪽이라 / 밀양 아리랑도 흥얼거리셨지요 / 한마디로, 세월은 흘러서 / 멈추지 않는 물인지라 / 젊은 아버지의 추억은 / 이 땅에 남지도 않고 / 아버지는 하얀 소금이 떨어져서 돌아가셨습니다 / 아버지, 남북통일이 되면 / 또다시 이 땅에 태어나서 / 남북을 떠도는 청정한 소금 장수가 되십시오 / '소금이여, 소금이여' / 그 소리, 멀어져 가는 그 소리를 듣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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