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원 교무/육군사관학교 화랑대교당
8년 군 생활 가운데 병사 26개월, 군종장교 3년을 복무한 강원도 화천의 사계절은 여느 곳만큼이나 뚜렷하다. 이곳의 장병들은 일반적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구분과는 달리 덜 더운 여름, 아주 더운 여름, 덜 추운 겨울, 아주 추운 겨울로 이곳만의 뚜렷한 기후 변화에 적응해야만 한다.

병사와 군종장교로서 화천에서의 겨울을 6번을 지낸 나로서도 간혹 아주 추운 겨울을 상상하면 온몸이 움츠려든다. 하지만 환경에 순응하며, 환경을 이용할 줄 알면 오히려 혹독한 추위와 혹서기의 더위는 군종활동의 충분한 자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기후라는 자원을 활용한 3년간의 군종활동은 이미 하나의 패턴을 만들어냈다. 덜 더운 여름과 덜 추운 겨울은 자전거를 타고 전방을 순례하며 위문하고, 아주 더운 여름은 시원한 먹거리로 장병들의 지친 몸을 위로하며, 아주 추운 겨울은 눈삽을 들고 제설 작전을 하는 장병들과 함께 도로 위를 걸었다.

군종장교가 자전거를 타고 위문을 다닌다? 조금은 생소할지 모르지만 화천 전방 지역에서는 결코 신기한 일이 아니다. 평소 MTB를 즐기는 터라 배낭에 간식을 가득 넣고 험준한 전방을 다녀오면 이만한 운동도 홍보 효과도 없다.

전방의 경계 근무 장병들이 임무 교대 후 주둔지로 내려와 종교시설을 찾을 때 생소한 원불교 교당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전방 소초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군종장교가 신기하기도 하고, 그때 각인된 군종교무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교당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추운 겨울이면 눈삽을 들고 장병들과 함께 제설 작전을 했다. 전방은 통상 눈이 오면 안전을 위해 차량 통행이 제한되기 일쑤다. 일요일에 눈이 오면 종교행사 병력을 수송하는 차량 통행이 금지돼 모든 종교행사는 취소되고, 제설 작전하기에 바쁘다.

그럴 때면 교당에서 간단한 종교의식을 집전하고 군종병과 눈삽을 들고 길거리로 나가 장병들과 함께 제설을 하고 위문을 하였다. 추운 날씨에 그들과 함께 눈을 치우며 땀 흘리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기도나 설교만큼의 위안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현장중심의 군종활동 가운데 새롭게 시도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출가 이후 '어떠한 이유에서든 종교시설에 오지 못한다면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환경의 제약과 시간의 제한을 받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게 하자'라는 신념을 늘 지켜왔다.

더욱이 더우면 더운 곳으로, 추우면 추운 곳으로,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곳으로 찾아가는 '나는 지금 여기에서 그들과 함께 하는 군종장교'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