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식 신부 /성공회대 교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들 중 하나가 '소통'이다. 이 말에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런 경향을 반영하듯 소통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들이 전국 곳곳에 넘쳐난다. 심지어 예전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동물들의 소통 패턴까지 연구한 다큐멘터리 필름도 본 적이 있다. 미디어나 작품이 사회현상을 담아낸다는 점을 볼 때, 그만큼 소통 문제가 우리에게 절박하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소통을 잘하는 동물 중 으뜸은 단연 돌고래다. 돌고래들은 초음파를 통해 교접을 하는데 그 범위가 실로 넓다. 200개 이상의 의사표현이 가능하다고 했던가. 그래서 지진 등 자연에서 발행하는 위협을 미리 알아 경고를 보내고, 먹이 감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심지어 이성 친구에게 애교를 부리기도 한단다.

물론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기는 하지만 돌고래나 동물들의 소통은 정말 중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의사소통이 일종의 텔레파시를 도구화한 것이어서 거짓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진이 일어날 기미도 안 보이는데 다들 대피하라는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인간의 말에 진실을 담아내어야만 최소한 돌고래들이 서로에게 갖는 정도의 신뢰감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토스토에프스키가 쓴 단편 중에 '여린 마음'이라는 작품이 있다. 하급 관리 한사람이 미쳐버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 이유가 단순하다. 어느 날인가 상사가 과제를 주었고, 시간이 촉박해 도저히 실행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노심초사,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신경쇠약이 찾아왔고 급기야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사태의 전말은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정작 명령을 내린 상관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무방한 과제를 그에게 준 것이었다. 진즉에 상사분이 귀띔해 주었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사실 소통이 상호간의 문제인 듯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권력의 논리가 깊숙하게 숨어 있다. 그래서 소통을 강조하는 당사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단어가 갖는 느낌이 극적으로 달라진다. 힘을 가진 사람이 소통을 거론할 때면 자신의 의도가 아랫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으니 앞으로는 자신의 말에 주의를 좀 더 기울이라는 경고가 될 것이다.

반면 아랫사람이 소통을 원한다면 무엇인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쉬운 일이 생겨서이다. 소통을 원하는 당사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상황이 결정되는 것이다.

교육방송에서 매년 개최하는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EIDF. 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 2016에 '휴먼(Human)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출품되었다.

프랑스 감독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US-BERTRAND)의 2015년 작품이다. 간간히 목가적인 풍경을 담은 장면이 나오지만 순전히 인터뷰로만 엮은 작품으로, 행복, 폭력, 동성애, 여성, 난민, 죽음 등등 수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재미난 점은 이 작품 내내 질문은 전혀 등장하지 않은 채 그저 대답들만 나오는데도 그들이 말하려는 바를 금세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말을 하지 않고 단지 표정만 잡은 사람들도 대거 등장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까지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소통의 다양한 방법을 알 수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이제까지 소통의 세 가지 측면을 거론해보았다. 소통의 굽은 길을 펴려면 진실을 담아내야 하고, 소통의 좁은 길을 넓히려면 권력관계를 뛰어 넘어야 하며, 소통의 모호한 길을 분명히 하려면 말없는 자의 말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진실이 사라지고 권위와 권력이 판을 치는 세상에 뜻 모를 온갖 미사여구만 난무하다면 그 사회는 크게 병들어 있는 것이다. 내 비록 의사가 아니어도 진단이 전혀 어렵지 않은 경우이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높은 점수를 주려해도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부탁이 한 가지 있다. 아래에서 간절하게 소통을 부르짖어도 윗분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 법이다. 윗분들의 자세가 달라져야 그런대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자기 말은 줄이고 아랫사람들의 애달픈 사정을 경청하면 소통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아니, 아예 입장을 바꾸어서 배려를 해주면 소통에 날개까지 달아줄 것이다.

정말 부탁합니다. 국민의 소리를 좀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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