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대정진기도 체험

▲ 박혜연 교도 / 서울교구 여성회
인생을, 삶을 바꿀 만한 사건도 뜻하지 않은 작은 일로부터 시작되어지는 것 같다.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를 앞두고 교당에서는 전 교도가 함께하는 100년 성업 대정진 릴레이 기도가 계속되고 있었다. 초반엔 내 차례가 되면 의무감에 하기도 하고 가끔씩 잊어버린 적도 있을 정도로 절실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교당에서 가족에 대한 간단한 심고 정도가 내 기도의 전부였을 만큼 기도를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교당 법회 때 진행 순서에 따라 기도 해본 것 외에는 큰 느낌 없이 흘러 왔었다.

100년 성업 기도 해제가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다. 교당에서 정식 법회 식순을 인쇄물로 만들어 각 가정에 배포하고 특별한 정성과 적공으로 모두의 마음을 모으는 기도를 해달라고 독려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설펐지만 차근차근 해보니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모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거의 끝날 때쯤에는 꽤 익숙해지면서 기도문만 간단히 올렸던 것보다 마음이 훨씬 편안하게 집중되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끝난 후엔 스스로 뿌듯함과 충만함에 미소 지으며 성가를 흥얼거리며 즐거운 하루를 시작하는 날들도 생겼다.

기도에 대한 관심 보다는 교리에 대한 궁금증들을 찾아보고 해소하는 데 더 많은 흥미를 가졌고 공감은 하였으되 행동하지 않았다. 그러던 누군가의 기도가 나를 있게 하는 힘이 되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내 주변의 이웃, 사회, 국가, 세계의 약자들에 대한 생명과 평화를 위한 기도를 스스로 하게 될 때는 가끔씩 놀랄 때도 있다.

이 법을 만나지 않았다면 수없이 밀려오는 경계에서 돌리는 마음을 챙길 수 있었을지, 좋은 인연들을 만나 소통하고 배우고 은혜를 나누는 방법이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될 기회는 있었을까.

이러한 위력의 연속 속에서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근현대 100년 해원 상생 치유 화합의 특별천도재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의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는 소름 돋는 벅차오름 뿐만 아니라 나를 제대로인 원불교인으로 성숙시키는 소중한 기회이자 행운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념대회가 끝난 후 폭풍 뒤의 잔잔함처럼 크게 흔들림 없이 기도하는 일상들이 지속되고 있었지만 큰 행사 뒤의 허탈함으로 이제부터는 무엇을 위한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던 중 청소년국 청년회 담임 최원심 교무님이 우리 교당에서 '개벽의 일꾼, 청년 일상기도문'을 진행한다며 동참을 호소해 챙겨두었던 기도문이 생각났다.

그래서 지금은 이 기도문이 널리널리 더 많은 이들에게 퍼져나가 그 위력으로 이 땅의 모든 청년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될 수 있도록 내 기도의 첫 번째 항목에 올려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올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가 정신수양뿐만 아니라 사리연구와 작업취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과 함께 기도 중에 생기는 마음의 변화나 경계를 다른 종교들은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있는지 책을 찾아보거나 유튜브 설교 동영상을 보기도 하니 기도는 사리연구요, 끊임없는 참회 반성이요,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죽기로써 하지 말며 해야 하는 것은 죽기로써 해야 한다는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유무념공부로 하나씩 하나씩 헤쳐 나가니 기도는 작업취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종경〉 교의품 21장에 "우리가 경전으로 배울 때에는 삼학이 비록 과목은 다르나 실지로 공부를 해나가는 데에는 서로 떠날 수 없는 연관이 있어서 마치 쇠스랑의 세 발과도 같나니, 수양을 하는 데에도 연구·취사의 합력이 있어야 할 것이요 연구를 하는 데에도 수양·취사의 합력이 있어야 할 것이요, 취사를 하는 데에도 수양·연구의 합력이 있어야 하나니라. 그러므로, 삼학을 병진하는 것은 서로 그 힘을 어울려 공부를 지체 없이 전진하게 하자는 것이며"라는 법문을 찾고서 기도 속에서 삼학을 길어 올릴 수 있겠다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과 하나의 생각 하나의 행동이 커다란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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