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창간호의 표지와 속지.
기관지인 신문이나 잡지는 시대상황에 대응한 소식을 전해준다. 그런데 원불교 교단은 대종사 열반(1943) 당시부터 8.15(1945) 민족해방에 이르기까지 기관지를 발간하지 못했다. 일제의 탄압 속에 원기25년(1940) 〈회보(會報)〉폐간부터 원기34년(1949) 〈원광(圓光)〉창간까지 극절한 시대에 교단의 상황과 관점을 충분히 찾아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 가운데 원기31년(1946) 금강단이 발간한 〈금강(金剛)〉창간호가 있어 주목된다. 금강단은 해방 후 전재동포구호사업 가운데 순직한 주산 송도성(主山宋道性, 1907-1946)종사의 얼을 받들기 위하여 중앙총부 청년들로 구성된 수양단체이다. 3월27일 열반을 당하고 30일 청년 남녀 30명이 송대에 모여 발기인회의를 갖고 "(교단의 대사업을 위하여) 청년의 지혜를 모아 도의로 얽힌 강력한 친화단결체가 필요하다"고 뜻을 모은다.

종법사인 정산종사는 금강단 연합회에 참석해 "개인 개인의 개체를 부수고 오직 하나에 귀속해야 하나니, 이러한 단합에는 남녀와 노소며 부귀와 빈천이며 증애와 원근이 없나니라"라는 법어를 내린다. 명예단장에 박장식(朴將植, 1911-2011)종사, 단장에 안이정(安理正, 1919-2005)종사를 선출한다. 그해 5월1일 유일학림이 개교되고, 15일에 기관지 〈금강〉창간호를 발간한다.

창간호는 프린트판 4×6배판 40쪽이다. 구성은 머리에 선서·정산종사 휘호·주산종사 법어를 싣고, 단가·창간사·정산종사 법설·기념사·기념시·취지문·단원시가작품·주산종사 추모특집을 실었다. 말미에 회원명부·단계(團界)소식·편집후기·금강단 단가를 부록했다. 따라서 새로운 건국기에 처한 교단에 있어서 주산종사의 열반과 관련한 정황이 잘 드러난다. 특히 대종사 만년의 친견제자들인 청년들의 성업(聖業)계승 각오는 물론 교단 상하의 이들에 대한 기대와 격려가 어우러져 있다.

주산종사는 3월20일의 최후법문에서 '진리는 고금을 통하여 변함이 없고 시방을 두루해도 다함이 없으니, 우리는 이 진리를 체받아서 진리적 생활을 하자'고 설한다. 금강단취지서는 '질곡과 고난의 밤은 가고 엄숙한 민족의 아침이 밝아와서 우리 겨레의 험난하던 역사에 희망과 광명과 자유의 새 빛이 비추는 동시에 본교(本會)의 대운(大運)도 민족의 새 빛과 함게 억눌렸던 기운이 다시 새 날을 맞게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민족과 사회상황에 대응한 교단의 미래상이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대전진을 위해 금강같은 주인공이 될 것을 다짐하는 기개가 넘쳐나는데, 2호 발간으로 잇지 못했으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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