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광 교무 / 공군사관학교 성무교당
추석을 가배, 가위, 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한다. 이 때는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에 있어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할 계절이 되었고 1년 중 가장 큰 만월 날을 맞이한다. 추석 무렵은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서 살기에 가장 알맞은 좋은 계절이고 풍요를 자랑하는 때이기에 마음이 유쾌하고 한가하다.

예전에는 농군들이 그 해에 마을에서 농사를 잘 지은 부잣집을 찾아가면 먹을 것이 풍족하니 인심도 좋아서 기꺼이 술과 음식으로 일행을 대접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말이 생긴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추석에는 유례없는 대풍으로 창고를 가득히 채웠는데도 불구하고 벼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예년 같으면 수확의 기쁨에 취해 풍요로운 추석을 준비할 테지만, 올해는 2년 연속 연이은 풍작에 따라 쌀 재고까지 산더미처럼 쌓이면서 바닥 모르고 추락하는 쌀값 때문에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철 흘린 비지땀이 억울할 지경이라고 한다. 풍작으로 쌀이 많이 재배되었는데도 현시대의 시장경제논리로 보면 오히려 손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은생어해(恩生於害) 해생어은(害生於恩)'의 이치를 공부한다면 어려움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은생어해 해생어은'은 〈정전〉의 '일원상서원문'에 나오는 중요개념의 하나다. 우리는 흔히 은이나 해를 고정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상대적 현상세계에 있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음양상승의 원리에 따라 한시도 쉬지 않고 변화하고 있으므로, 영원한 은과 영원한 해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은과 해는 서로 반복되고 순환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은생어해 해생어은의 현상이 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해에서 은혜가 나오는 한 예를 들어 보면, 젊어서 가정도 불우하고 고생과 실패를 당해본 사람이 그 과거를 거울삼아 각성하고 노력하여 큰 성공을 하는 경우와 같다.

이와 반대로 은혜에서 해가 나오는 예로서는, 젊은 시절 부모의 보호에만 의존하여 호강을 누리며 살던 자녀들이 그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아무런 자주력도 갖추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경우이다. 이렇게 상대적인 세계의 모든 것은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은이 해가 되기도 하고 해가 은이 되기도 한다는 이치를 깨달아, 은혜와 해에 너무 끌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은혜가 참된 은혜가 되게 하려면 궁극적 진리로서의 '법신불 일원'을 체득하여 언제나 상대적 은과 해를 초월한 지선(至善)ㆍ지복(至福)의 자리에 안주해야 한다. 동시에, 은혜의 순경은 물론, 해독의 역경을 당할지라도 겸양하고 감사하며, 선업을 쌓고 공덕을 베풀기에 노력해 한없는 복락을 장만해야 한다.

이번 추석의 풍작이 현재의 시장경제논리로 손해다. 그러나 흉작이 아닌 것에 감사하고 이러한 상황에 복을 지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키울 수 있다면 또 다른 은혜가 꽃피울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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