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가출가 교도들이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궂은 날씨에도 성주성지 사드배치 반대를 위한 '평화 명상기도회'를 열고 침묵과 명상으로 평화적 시위를 벌였다.

나도국 원로교무
원불교혁신포럼 공동대표
성주는 정산종사 탄생지이자 원불교 자존심
성지수호, 죽음까지 불사해 기필코 막아내야
사드반대, 님비(NIMBY) 문제 될 수 없어

원불교혁신포럼은 성주성지에 전쟁무기를 배치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결단코 반대한다. 모든 원불교인은 분노한다.

성주는 삼동윤리를 선포한 정산종사의 탄생 요람이다. "한울안 한이치에 한집안 한권속이 한일터 한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라는 삼동윤리를 제창한 평화의 성자 정산종사는 인류사회에 새로운 윤리를 제시해 지구촌에 평화의 세계를 건립할 초석을 놓았다. 이러한 성주요람에 어떻게 전쟁무기를 배치하여 성지를 봉쇄하려하는가? 골프장 위쪽 군사기지 배치 예정부지에서 반경 3km의 거리라 사드는 절대로 안된다.

그런데 사드 문제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내용을 생각해 봐야 한다. 교단적인 문제와 사회적 문제이다.

사회적 문제는, 우리가 반대하는 이유는 성지 바로 위에 군사기지를 배치하기 때문에 성지가 봉쇄되니 우리는 당연한 주장이지만 일반국민들의 시각은 어떨까? 사드문제의 여론은 찬성이 조금 우세하다고 언론에서 보도한다. 그러나 성주에 이어 김천시민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우리집 뒷마당에는 안된다는 님비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들도 절대불가의 이유를 말하지만 결국 같은 주장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의 처신을 옹색하게한다. 국민들이 볼 때 원불교의 반대는 지역주민들의 님비현상과 달리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 즉 찬반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래야 우리의 반대가 존중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반대를 위한 정치적인 주장을 내세울 수도 있다. 그것은 조선 후기 동학혁명처럼 역사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회적인 행동이라야 모든 국민의 지지와 존중을 받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사드 반대의 근거를 모두가 동의하는 교법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의 성지에 사드가 들어오면 왜 안되는가를 국민과 전 교도에게 설득하여 님비가 아님을 말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산종사의 삼동윤리는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세계평화의 원리이기에 이를 사회화하여 동의를 얻음으로써 성지수호의 명분과 합력을 얻게 될 것이다.

소수의 목소리일망정 교법으로 내는 소리는 법계를 움직인다. 대중의 목소리라도 법을 담아야 우뢰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우리는 국가 사회 안의 존재이며 이 관계속에서 사요정신과 삼동윤리를 실현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성주성지를 수호해야 한다.

두 번째는 교단의 문제이다. 과거에 원불교의 이름으로 영광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했다. 그러나 원전은 현재 6기가 가동중이다.

이번에는 경산종법사께서도 비록 사드반대를 위한 자리는 아닐지라도 사드와 성지의 양립은 불가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당국에서 사드를 배치한다고 결정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생결단하고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반대는 물리적인 투쟁을 하면 우리에게는 법률 배은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찬반이 분명한 가운데 우리가 행동으로 맞설 수는 없다.

〈정전〉 솔성요론에 길이 있다. 그리고 대종사님의 생애에서 답을 찾자.

원기26년경 일제는 태평양 전쟁에 조선까지 내선일체라 하여 전쟁에 동원하였다. 남녀교역자를 전쟁물자 생산에 투입하고 우리를 일본의 황도(皇道)불교화하려고 대종사의 일본 방문을 강권했다. 일제는 불응할 경우 교단 폐쇄를 하겠다는 정책을 숨기고 강압해 왔는데도 무저항 비폭력으로 일관하는 대종사의 모습에 조선의 간디라하고 불법연구회를 그냥 두면 앞으로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과 연합하여 대종사가 구심점이 되어 독립운동을 할 것이니 일본 방문을 미루는 대종사를 위해하고 교단을 해체하려 계획했다.

그것을 간파한 대종사는 교법과 교단을 위하여 스스로 순교의 길을 떠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대종사의 열반 과정을 살펴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게송 반포 시기라든지, 먼 수양길을 예고한 점, 53세에 숙환도 없이 주무시듯 떠난 점, '급하여 만전을 기하지는 못했으나 〈불교정전〉 한 권에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한 점 등 스스로 계획하고 순교한 것이다.

주세불은 중생제도의 대원력을 다 펴지 못하고 법과 교단을 지키기 위해 일제를 대자대비로 포용하며 순교했던 것이다.

우리가 성지수호에 결연히 나서려면 순교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야 모든 국민들이 원불교가 삼동윤리의 평화의 요람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함을 알 것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더구나 국내여론의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경산종법사가 반대 견해까지 표명했으니 과거의 영광원전 반대처럼 끝날 수는 없다. 그때는 영산성지가 봉쇄되지는 않았다. 지금 교단은 성지를 수호하느냐 마느냐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강 건너 불 보듯 뒷짐지고 쳐다만 볼 것인가? 공식조직이 가동되어 총력체제로 나가야 정부도 원불교의 공식 뜻으로 알 것이다. 교정원장 이름으로 신문에 반대광고와 언론 인터뷰를 하라.

지금 우리는 과거처럼 교단의 존립이 문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성지를 봉쇄 당함은 원불교인의 신앙을 봉쇄 당하는듯한 정신적인 충격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성주에 사드배치가 안되면 국가의 존립이 문제되는가? 국가의 결정권자들이 우리 성지를 간과했거나 혹은 알고도 묵살하고 국가안보를 앞세워 배치를 강행한다면 우리의 절대반대 의지도 알아야 한다. 정부가 우리 시설물이나 부지를 수용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6.25 전쟁 이후 서울요지인 남산수도원 부지를 절반이상 수용해버렸고 신도안 삼동원은 통째 물러나야 했다. 물론 국가안보 문제라 순응했다. 그러나 이번은 성지다. 이번에는 죽음으로 맞서서 배수진을 쳐야 한다. 결코 과격한 방법이 아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수용 당한다.

최초의 한 사람이 성지에서 순교를 하고 다음 사람이 보름 후에 순교하고 이렇게 9인 선진님의 법인기도를 본받아 십인일단으로 순교하고 여차하면 2차·3차 순교도 불사한다고 발표하고 진행하면 결코 사드는 배치할수 없을 것이다. 한두 사람의 순교는 특별난 사람의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출가재가 누구든 자원 순교(殉敎)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열 명이 되면 순교를 위한 기도를 올린 후에 순서는 뽑기로써 결정하자. 원불교 역사에 제2의 혈인성사로 남을 것이다.

우리 교단에는 생로병사를 해탈한 항마위가 4천여 명이나 있고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는 출가위도 백여 명이나 살아 있다. 이 분들은 교단의 정신적 지주이며 교단이 위기를 맞으면 그에 합당한 행동을 불사할 분들이다.

과거 월남에서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스님들이 순교의 길을 걸었고 현재도 티벳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스님이 순교하고있는가? 우리나라에도 동학이나 가톨릭에서는 조선후기에 또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나왔는가? 종교가 불의를 향해 또는 항거할수 없는 모든 핍박에 저항하는 최후의 방법은 대종사처럼 이러한 무저항 비폭력의 자기 희생뿐이다.

인류를 위한 삼동윤리를 제창한 평화의 성자 정산종사의 탄생 요람을 핵을 실을 수도 있는 전쟁무기로부터 유린당하지 않고 지키려는 순교는 곧 삼동윤리를 세상에 실현하여 세계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희생이나 다름없다. 이제부터 성지 수호를 위한 삼동윤리의 기치를 높이 올리자.

원불교의 가치와 사회의 가치가 합일할때 순교도 투쟁도 동력을 갖고 지지를 받는다. 그 합일은 삼동윤리 정신으로 비롯되며 우리의 사드 반대 순교는 사회적 지지를 넘어 세계를 감동시킬 것이다.

원불교에서 순교의 대열이 끊임없이 횃불처럼 타오르면 인류사회에서는 21세기의 합리적 시대에 열 분의 순교는 경이로움일 것이다. 세상을 위한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원불교 신앙과 수행의 깊이는 삼동윤리 실천으로 나타나 세상을 향한 평화의 리더십이 되어 남북의 반목을 녹여내고 상생하는평화를 불러올 것이다.

사드 철회의 확실한 방법이 있는가? 이렇게 계획을 세워 진행한다면 혁신포럼에서도 적극 지지할 것이며, 기꺼이 남은 생애를 불태울 지원자들도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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