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잘하면 직원도 잘하게 됩니다"

성실은 위기 극복하게 만드는 신뢰의 초석
사업 실패도 은혜로 보여

30년 동안 묵묵히 우리나라 공업의 한 축을 담당해온 (주)코엠 임종호 대표(71·법명 정호·울산교당)를 만나러 가는 길. 울산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톨게이트를 벗어나니 울산의 상징, 공업탑이 우뚝 솟아있다. 울산의 중심지, 남구 삼산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경쟁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기업의 대표라고 믿기지 않는 온화한 얼굴을 한 그가 맞이했다.

비록 작은 규모의 중소기업이지만 한 기업의 대표 사무실치고는 매우 아담하고 소박한 것이 외형보다는 내실을 중요시하는 그의 성품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책장 한켠에 쌓여 있는 각종 감사장과 위촉장들은 그동안 그가 살아온 삶의 가치를 짐작하게 했다.

"30여 년 전에 전라북도 진안에서 작은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온 것이 울산입니다. 남의 회사에 상무로 있는데 친구가 전화를 했어요. 우리나라가 몇 년 전에 러시아에 빌려줬던 차관을 석탄으로 받게 됐고 그 즈음에 울산항으로 들어오게 됐대요. 그 때 당시 우리나라가 전력이 모자라는 형편이라 공단지역에서 열병합 발전소를 세우는데 그 원료가 되는 석탄을 선별하는 공장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지요."

당시는 에너지 가격이 올라감에 따라 열병합 발전에 대한 관심이 막 출발하는 시기여서 열병합 발전소는 대구 염색 공단에 1개, 울산에 1개가 전부였다.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그에게 'SK에너지'에 납품하는 석탄 선별 작업 공장을 연결시켜 준 지인은 오직 그의 성실성 하나만을 믿었다.

이후 그는 오늘이 있기까지 맨주먹으로 모든 것을 일궜다. 석탄 중에서도 유연탄을 미세한 분말로 갈아서 액체 연료처럼 유동층 연료로 만들어서 납품하는 공정이다. 유연탄에 섞여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스크린 작업을 위해 한강에서 모래를 선별하는 기계를 빌려와서 시작했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지금까지 3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유연탄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아 중국, 호주, 러시아 등에서 100% 수입하기 때문에 공단과 부두가 있는 울산항이 최적지다. 작업의 특성상, 주로 기계로 진행되고 대형 트럭으로 운송되기 때문에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다. 현재는 제품 생산과 운송까지 함께 맡아 30년 넘게 'SK에너지' 협력 업체로 일하고 있다.

제일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폐비닐 플라스틱을 파쇄해서 연료화하는 회사를 인수했다.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산업용 쓰레기인 폐비닐을 선별하고 파쇄해서 열을 많이 사용하는 시멘트 공장에 납품하는 일인데 기계가 빨리 망가졌다. 기계가 고가라 비용이 많이 들어 갈수록 적자가 누적됐다. 회사를 처분하고 싶어도 사고자 한는 사람이 없었다. 방법이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밤새 기도만 했다. 아침이 훤히 밝아오는 걸 보고 사무실로 나갔더니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회사를 사겠다고 했다.
"기도만 했는데 며칠 만에 풀어지더라고요. 지난 일들을 생각해보면 나를 힘들게 했던 일들이 은혜로 보입니다. 그런 시련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 마음이 탄탄해질 수 있었겠는가 싶어요. 진리의 양면성이지요."

그는 기업을 여러 사람이 같이 사는 생활터전으로 생각한다. 한번도 직원을 내보낸 적이 없었다. 주로 기계를 다루는 업종이어서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내치지 않는다. 도저히 같이 일을 할 수 없겠다 싶은 직원도 설득하고 가르쳐서 함께 간다.

"사장이 중심 잡으면 직원도 따라오게 돼 있고 사장이 잘하면 직원도 잘하게 돼 있습니다. 내 것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를 받아들이니 편안합니다. 급할 게 없어요."

석탄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공정은 아무리 철저하게 해도 공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현상 유지만 할 뿐 앞으로 크게 성장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욕심이 별로 없어 이 정도 사업에 만족한다. 아들이 누구를 존경하느냐는 물음에 아버지라고 답을 했다는 말을 듣고 이 정도면 인생 잘 살았다싶다는 그. 작은 것부터 챙겨서 커진다는 이소성대의 원리가 삶에 배어있는 그다.

그는 원불교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울산에 처음 와서 힘들었을 때, 지나가다가 원불교 간판을 보고 들어간 곳이 울산교당이다. 평소에도 신앙생활이 몸에 배어 있어 그의 사무실 책상에는 교전이 항상 놓여있다. 기도가 그의 삶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울산교당 교도회장을 23년째 맡고 있다. 부산울산교구 교의회 부의장, 울산지구 교의회의장까지 맡아서 회사 일을 제쳐두고 뛰어다닌다.

"행복이 큰 데 있지 않습니다. 오이를 심었는데 어제 꽃이 폈어요. 오늘 보니 또 폈어요. 얼마나 행복합니까. 작은 데서 행복이 있습니다."

딸 하나, 아들 둘을 뒀는데 딸이 현재 원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임진은 교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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