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봉 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
남북통일, 독일역사에서 배워야
전 국민 통일문제에 관심을

최근 북한·통일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북한·통일 전문가들이 원광대학교에서 대학생들과 북한인권 실태와 올바른 한반도 통일 방안 등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사)통일아카데미와 (사)통일미디어는 5일~8일 원광대에서 열리는 '청년이 설계하는 미래한반도 U-플래너 3기' 아카데미에 류길재 전 통일부장관, 홍진표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이사, 박상봉 전 통일교육원장, 김형수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탈북자 등 국내 북한·통일 전문가 8명이 참여해 한반도 통일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박상봉 전 통일교육원장의 '독일의 통일과 교훈'에 대한 강의는 대학생과 청년들에게 좁은 좌우 이념적 시각을 벗어나 통일 자체에 대해 어떻게 합리적인 사고를 해야할 것인지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박상봉 전 통일교육원장은 "지금 우리 사회는 통일에 대한 잡음과 갈등이 많다. 국내여론이 갈리고 여러 갈등이 있어 실제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독일처럼 그것을 잡을 수 있는지 걱정이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철혈재상 비스마르크(Bismarck, 1815~1898)의 '정치라고 하는 것은 역사속에 돌아다니는 신의 발걸음을 쫓아가서 그의 옷자락을 잡는 것이다'는 명언을 인용하면서, "정치가가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정말 훌륭한 정치가인지 아닌지는 역사적 기회 앞에 섰을때 진가를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을 이루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헬무트 요제프 미하엘 콜(Helmut Josef Michael Kohl) 총리는 당시 동독에서 일어난 시민들의 '월요데모'와 소련 대통령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Mikhail Gorbachev)의 동독 개혁개방 찬성에 동독 공산당 정부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크게 어려움을 당한 동독은 서독 콜 총리에게 150억 마르크 지원을 요청하자, 동독에게 서독의 국가연합체제로 편입할 것을 요구했고, 공산당 정부가 아닌 동독 시민들이 직접 자유선거에서 뽑힌 대표들과 만나 회담을 계속하길 요구한다. 이러한 과정이 서독 콜 총리의 혼자 힘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왔을 때 그 상황을 과감히 유리한 측면으로 만들어낼 줄 아는 것이 독일 통일에서 배워야 할 점으로 내세웠다.

다음으로 박 원장이 지적한 교훈은 "지금 남한 정부는 현재 김정은 체제와 통일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없음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독의 경우 시민들의 월요데모,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 동의 등 내외적으로 동독 공산당 정부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989년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 서기장 사퇴를 계기로 1990년 동독 최초 민주적인 선거로 독일 자유민주당이 탄생한다. 자유민주당은 서독 흡수 통일에 적극적으로 추진해 이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기반을 만든다. 즉 현재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대립하고 있는 북한 정권과는 참된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동독 공산당이 몰락한 후 서독 흡수통일이 이뤄진 사례를 들어 꼬집은 것이다.

박 원장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동독의 기존 정권이 무너지고 민중에 의한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며 "현재 김정은 정권과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예멘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 예멘 아랍공화국과 예멘 인민민주공화국이 통일 국가 예멘을 평화적으로 건국했지만, 얼마 후 권력분배의 갈등이 촉발돼 내전으로 비화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독일은 통일을 한 뒤에 모든 경비와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학습할만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한국은 독일, 베트남, 예멘의 통일 상황을 보고 배울 점이 많다. 특히 독일이 어떤 시행착오와 어떤 비용이 들었는지를 깊이 연구하면 앞으로 남북통일에 대한 준비를 실속있게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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