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건 교도 / 남대전교당
우리나라의 각 종교별 인구 규모가 곧 발표될 것 같다. 통계청의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다. 이는 종교별 인구 분포와 교세의 여러 내역을 통계 수치화한 것이므로 각 종교의 위상은 물론 국민 정서상 호감의 정도를 금방 알 수 있다. 인구통계학적인 측면에서 원불교의 교화 결과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까지도 측정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다.

2005년 당시 통계청이 발표한 종교별 인구는 불교 1072만6463명, 개신교 861만6438명, 천주교 514만6147명, 원불교 12만9907명 순이었다. 그 이후 10년 만에 국가기본 공식통계가 이번에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 4대종교로 자리매김한 원불교의 교도수가 감소세로 확인될 경우 그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없다.

각 교당마다 교도 수나 법회 참여 인원을 감안해보면 그 결과는 대충 그려진다. 영세교당인 이른바 5·6급지 교당이 200여개나 된다는 현실이 이를 방증해준다. 이들 평균 출석 교도가 고작 9명이라고 한다. 상당수의 교당이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외관상 교당 수효가 전체적으로는 늘어난 것은 괄목할만한 성과로 치부할 수 있다. 반면 이와는 별도로 교화의 장기 침체로 인한 갖가지 문제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재정부족, 교화·교육·자선의 차질, 교무복지 개선 어려움 등을 초래한다. 교당에 배치해야 할 교무마저 부족하다. 전무출신 희망자가 매년 줄어들어드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어느 종교나 사정은 비슷하다. 종교인구와 종교시설이 줄어들면서 종교 존립자체의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그 첫째 요인은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다. 우리나라의 출산율(1.24명)이 세계 꼴찌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비중 또한 날로 커지고 있는 탓이다. 10년 후에는 초고령화 사회(노년층 비율 20%)에 진입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당장 내년부터 생산인구 감소로 노인의 복지와 부양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

이를 단기간에 해소할만한 명쾌한 해결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사회 양극화 구도 또한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 각 분야의 역동성이 떨어지면 그로 인한 폐해는 우리 사회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이러한 현상은 종교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각 교당에 이 기준을 적용해보면 지속가능한 성장 잠재력의 수준을 가늠할 수가 있다.

지난해의 경우 우리나라 인구를 연령별로 한 줄을 세웠을 때 그 가운데를 의미하는 중위연령이 41.2세다. 일부 교당 형편을 살펴보건대 중위연령이 60세를 훨씬 넘긴다. 초고령화 수준에 머무는 교당이 상당수라고 추정할 수 있다. 막상 교당에서 어린이, 청소년을 찾아보기 힘들다. 청년 교화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교당이 수두룩하다.

또 하나 요인으로는 요즘 우리 사회의 종교에 대한 인식 변화를 빼놓을 수 없다. '종교이탈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청소년층에서 두드러진다. 물론 세계적인 현상이긴 하다. 청소년들은 진학이나 취업 준비에 바쁘다는 이유를 댄다. 그 내면을 보면 본능적인 감성차원에서 종교에 대해 회의적 성향을 보인다. 종교라는 조직적인 틀과 훈계조의 분위기에 묶이기 싫어하는 그들만의 자유분방한 문화 흐름을 닮아 가고 있다.

일반인들의 경우에서도 불신사회 풍조가 한몫을 하고 있다.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도덕적 믿음이 깨지는 영향도 있다. 개인 삶에서 종교의 비중이 낮아지는 원인은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종교와 사회의 연결 고리가 크게 약해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종교의 내적 역량 약화에서 이를 찾는 시각이 상존한다. 각 종교가 이에 대한 담론을 활발하게 모색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무리 사회가 물질만능의 극단적인 풍조에 휩싸일수록 명상이라든가 마음 치유 기능을 그리워하는 움직임이 조건반사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각 종교마다 여기에 주목한다.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는 세계주세교단임을 천명한 원불교로서는 '위기가 기회'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정신개벽에 대한 소태산의 포부와 경륜이 더욱 빛난다.

교화의 패러다임을 변환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더욱 힘을 얻는다. 치유 교화의 유용성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체험위주의 치유, 깨닫는 교화 프로그램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교당의 구조적인 차원에서의 변화 전략도 불가피하다. 각 교당별로 소통과 공감을 담은 장단기별 로드맵을 면밀하게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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