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금호역에서 무수막길을 따라 올라오면 한강 다리가 멀리 보이는 빨간 벽돌집 프루스트의 서재.
읽고, 쓰고, 전시하며 나누는 인문학 공간
동네 지역민이 지지하고 참여하는 낭독모임
30일까지 박지연 산티아고 순례길 사진전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의 소설가. 그를 만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했던 인물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방대한 분량과 프루스트의 독특한 서술방식에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으로 일컬어진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책, 그러나 이 책이 그의 인생 중반부를 바꿔놓았다. 그, 독립서점 '프루스트의 서재'를 운영하는 박성민 대표(39)다.

'읽으려고 차린 책방'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그래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는 대형서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대형서점 지하공간에서 보낸 7년 여의 시간을, 그는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단언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그는 살던 동네에서 직접 책방을 꾸렸다. 물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다. 그리고 그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동네 사람들과 공유하며 '소규모 출판물'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싶었다.

그렇게 '읽으려고 차린 책방'이 그가 운영하는 '프루스트의 서재'다. 신금호역에서 무수막길을 따라 올라오면 한강 다리가 멀리 보이는 언덕 위, 빨간 벽돌집이다. '보여지지도 못하고 반품되는 책들의 소중함을건져내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인문학이 그 중간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형 서점의 경제성 논리는 '잘 팔릴 것 같지 않다'면 도서 판매 목록에조차 오를 수 없게 만든다. 결국 내용이 좋은 책보다는 '잘 팔리기 위한 책'이 메인 판매대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책' 일명 인문학이 차지하는 공간은 빈궁하다.

'프루스트의 서재'에는 인문학의 다양한 독립 출판물들이 진열돼 있다. 그것도 책등만 보이게 꽂혀있는 대형 서점과는 달리, 책표지가 정면에서 보이도록, 혹은 책 내용의 핵심이 보이도록 양면으로 펼쳐져 있어,책들마다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물론 그가 애장하며 읽었던 중고서적들도 충분히 제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 프루스트의 서재에는 인문학의 다양한 독립 출판물들과 중고서적들이 진열돼 있다.

중고서적과 독립출판물
"중고서적과 독립출판물의 개연성은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책도 있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초월해 그대로 묻힌 책도 있다. 또 자본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진열장에 한 번 서보지 못한 책들도 중고책이 되고 만다." "개인의 자유로운 이야기와 활동이 상업적 가치라는 잣대에 막혀 출판물이 되지 못하는 것도 어찌보면 같다. 그러니 그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헌책방과 독립출판서점은 그 맥락을 같이한다." "나는 헌책과 새책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잊혀지거나 잊혀질 생각과 기록의 가치를 다루는 것이다. 이점이 중고책과 독립출판물이 공존하는 '프루스트 서재'의 존재 이유다."

그는 프루스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주인공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을 통해 잊고 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희미해진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소중했던 시간의 각인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이다"고.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으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는 소설의 모티브는, 훗날 후각적 자극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재생해내는 '프루스트 효과'로 입증되기도 했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처럼,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책'을 통해 누군가의 추억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그가 전하고 있는 것이다.

▲ 책 내용의 핵심이 보이도록 양면으로 펼쳐져 있어 책마다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읽고 쓰고 전시하는 공간
"책을 팔고 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는 그는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낭독모임을 열고 있다. 화요일 낭독모임인 달숨(달밤에 숨이 튼)은 회원들이 읽고 싶은 책 한권을 순차적으로 선정해 낭독하는 모임이다. 매주 토요일 낭독모임은 '소설의 극한'이라고 여겨지는 읽기 어려운 책, 바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 권을 끝까지 읽어보자는 프로젝트형 모임이다. 낭독 모임에 동네 주민들이 지지해주고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값진 일이다.

어느 때 방문해도 독립출판 작가들의 사진전과 그림전을 관람할 수 있다는 점도 '프루스트의 서재'만의 또 다른 매력이다. 1일부터 30일까지 〈엄마는 없었다〉의 저자 박지연 작가의 산티아고 순례길 사진전이'프루스트 서재'의 한쪽 벽면을 그려내고 있다. 지난 8월에는 〈고마워 거기에 있어줘〉의 저자 오지혜 작가의 인도여행 사진과 글 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과 그림 전시는 소소하게라도 자신의 것을 나누고 싶어하는 작가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동네분들이 부담없이 다양한 전시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있어서다. '프루스트의 서재'는 그렇게 무수막길 언덕 위, 동네 사람들에게 책으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기억되며 소중한 추억의 공간이 되고 있다.

▲ 30일까지 진행되는 산티아고 순례길 사진전.

그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있다. 독립서점 운영에 대한 내용이다. 서점은 책을 파는 장소라는 본질에 충실해야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수익을 유지해야 서점이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워크숍, 전시 등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의 독립서점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책이라는 본질과 너무 동떨어진 활동은 지양되어야 한다. 수익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면 즐겁지 않다. 정가제 시행 등 지자체와 정부의 정책이 아쉬운 부분이다"며 그는 각종 정부 지원사업들의 허실을 꼬집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방을 하고 있는 것은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책이 좋다. 그 뿐이다"는 그의 말이 긴 여운을 남겼다. '프루스트의 서재'에 있는 그,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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