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반부터 산업혁명을 거쳐 오면서 인류는 엄청난 과학의 발달로 거대한 물질문명을 만들어 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신문명이 과학문명을 어떻게 이끌어 갈 수 있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진리의 모습을 도학과 과학이라는 두 문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3주에 걸쳐 영산선학대학교 전흥진 교무의 '일원상 진리와 현대물리학'이란 주제를 통해 도학과 과학의 회통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 전흥진 교무 / 영산선학대 교수

1주 도학과 과학의 만남
2주 존재의 구조에 대한 관점 비교
3주 존재의 생성변화와 상호연관성 비교

▲ 정산 송규종사(1900년~1962년).
정산종사는 '우주만유가 영·기·질로써 구성돼 있나니,
영은 만유의 본체로서 영원불멸한 성품이며
기는 만유의 생기로서 그 개체를 생동케 하는 힘이며
질은 만유의 바탕으로서 그 형체를 이름'이라고 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을 통해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곧 과학과 도학이 조화를 이룬 참 문명세계를 이루고자 했다.

이러한 과학과 도학의 상호조화에 관한 논의는 현대사회에 있어 인류 공동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현대과학이 점차로 발달되고 서양에 동양사상과 불교가 유입되면서 물질 중심의 현대과학이 마음 중심의 동양사상이나 불교와 만나고 있다. 이러한 만남은 이제 시대적 요청이 됐고, 나아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영적 지도자이자 평화활동가로 알려진 티베트 불교의 달라이 라마는 1987년부터 2년마다 '마음과 생명 콘퍼런스'를 통해, 정신과학 분야는 물론 우주론이나 양자역학 등의 현대과학 분야와 불교 사이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대화는 불교와 현대과학에 대한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일원상 진리는 모든 종교와 사상의 근본원리로서 도학의 근본원리가 되고, 현대물리학은 현대과학의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일원상 진리관과 현대물리학의 진리관을 통한 도학과 과학의 상호이해는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을 함께 풍요롭게 하는 참 문명세계 건설에 대한 전망을 더욱 밝게 할 것이다.

일원상 진리와 현대물리학의 관점 비교
일원상 진리관과 현대물리학의 진리관에 대한 비교는 '존재의 구조에 대한 관점', '존재의 생성변화와 상호연관성에 대한 관점'이라는 2개의 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궁극의 근본원리를 추구하는 철학은 일반적으로 존재 그 자체를 연구하는 존재론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의 대상이 되는 존재는 자아(自我)라는 존재와 비아(非我)라는 존재가 있고 이 양자간에 관계가 있는바, 이 관계를 이론적 관계와 실천적 관계로 대별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자아와 비아와의 이론적 관계를 인식이라고 부른다면 이 인식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론이 따로 성립될 수 있고, 또 실천적 관계는 결국 가치와 그 실현에 귀착하는바 이 가치문제를 연구하는 가치론이 따로 성립될 수 있다.

앞의 2개의 비교 틀 중에서 '존재의 구조'에 대한 논의는 존재론에 속하고, '존재의 생성변화와 상호연관성'에서 고찰하는 일원상 진리관과 관련한 '은(恩)적 상호연관성'에 대한 논의는 가치론에 속하는 것이다. 한편 '존재의 생성변화'에 대한 논의는 동양철학의 생성론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지면 관계로 인식론에 속하는 '존재의 인식'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

▲ 달라이 라마는 우주론이나 양자역학 등의 현대과학 분야와 불교 사이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영·기·질'론을 통한 접근
일원상 진리관과 현대물리학의 진리관을 비교할 때에 정산종사의 영·기·질론을 매개체로 활용한다. 일원상 진리는 우주만유의 본원인 동시에 마음의 본성이고, 현대물리학은 물질을 그 탐구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영·기·질론에 있어서 마음과 물질을 매개하는 기(氣)라는 개념은 현대물리학에 있어서 물질의 파동성과 유사하다. 그래서 영·기·질론을 통해 일원상 진리관과 현대물리학의 진리관 사이의 접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대물리학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및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혼합된 양자장이론을 중심으로 논구한다.

영기질(靈氣質) : 마음과 기운과 물질은 둘이 아니다. 정산종사는 '우주만유가 영(靈)과 기(氣)와 질(質)로써 구성이 되어 있나니, 영은 만유의 본체로서 영원불멸한 성품이며, 기는 만유의 생기로서 그 개체를 생동케 하는 힘이며, 질은 만유의 바탕으로써 그 형체를 이름'이라고 하였다.

영(靈)은 만유의 본체로서의 속성과 영원불멸한 성품으로서의 속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영원불멸한 성품으로서 영은 우리의 자성인 공적영지(空寂靈知)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영은 기(氣)와 상관성이 있다. 기가 영지를 머금고 영지가 기를 머금어 영과 기는 둘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운용하는 데 있어서는 영이 체가 되고 기가 용이 된다. 이렇게 영기합일(靈氣合一)하므로 만유의 본체로서의 영은 결국 성가76장에서 밝힌 '영명한 한 기운' 곧 영명일기(靈明一氣)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우주만유의 본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유학의 이·기론 체계에서 질이 기의 응취로 규정되어 왔던 점에 응하여 정산종사는 '실체기(實體氣)는 사은(四恩)이요', '기(氣)는 우리 온 몸이 또한 기 덩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영과 기가 둘이 아니고, 질은 기의 응취이므로 질은 만유의 본체인 영의 화현(化現)이라 할 수 있다. 영과 기와 질은 그 속성이 다르기 때문에 구별되는 것이지만 서로 관계가 있으므로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영기질, 유·불·도 존재관의 발전적 통합
영·기·질론은 전통적 유·불·도 삼교의 존재관에 대한 발전적 통합과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통하여 우주만유의 존재구조를 영·기·질의 삼속성으로 파악한 존재론이다.

존재구조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영·기·질론과 같이 기(氣) 개념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상은 도교의 '정(精)·기(氣)·신(神)'론과 유교의 '이(理)·기(氣)'론이다. 정·기·신론에서 정은 형(形)을 전제하고 있고, 만물의 통일된 기초가 되는 정기는 운동변화할 수 있는 정미한 기이며, 신은 정신작용이다. 이를 영·기·질론과 관련시킬 때, 형은 질과, 정기는 기와, 신은 영과 관련성이 있으므로 정·기·신론은 영·기·질론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한편 이·기론에서 이(理)는 우주의 본원이면서 사물의 법칙이고, 기는 음양의 운동변화를 통해 만물을 생성하는 재료이다. 이를 영·기·질론과 관련시킬 때, 이(理)는 영과, 기는 기질과 관련성이 있으므로 이·기론은 영·기·질론과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영·기·질론은 도교의 정·기·신론이나 유교의 이·기론에서 살펴볼 때 유사한 면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면도 있다. 무엇보다도 영·기·질론의 영이 정·기·신론의 신(神)이나 이·기론의 이(理)와는 다른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만유의 본체로서 영원불멸한 성품 곧 영은 정신작용으로서의 신(神)의 속성과, 우주의 본원이면서 사물의 법칙으로서의 이(理)의 속성을 다 가지고 있다.

한편 정·기·신론에서는 신(神)을 기(氣)의 순수한 형태로 간주하면서 기를 중시하는데, 영·기·질론은 기(氣)의 개념을 수용하는 동시에 기 중심의 사상을 벗어나 영(靈)을 근원적 존재로 본다. 또한 영·기·질론은 이·기론의 이(理) 대신에 영(靈)의 개념을 도입해 우주만유의 본체와 인간의 다양한 차별상의 원리를 설명하며, 기(氣) 개념을 도입해 불교의 법신·보신·화신의 삼신설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만물의 생생약동하는 힘과 변화의 이치를 설명한다.

요컨대 영·기·질론은 불교의 심식론(心識論)을 기본으로 하여 유교의 이·기론 및 도교의 정·기·신론을 수용 지양한 포괄적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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