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 벤쿠버교당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만나던 사람이 줄어들면서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죠. 무슨 일을 해도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력은 하는데 성과가 없다는 거죠. 했던 실수를 되풀이 하고,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남들에 비해 뒤처지는 일이 많고,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이 잘 되지 않죠. 이런 사람들은 또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결국 배움입니다. 원불교 대종사님은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길로 배움의 길을 제시하셨죠.

"3. 사생(四生) 중 사람이 된 이상에는 배우기를 좋아할 것이요, 4. 지식 있는 사람이 지식이 있다 함으로써 그 배움을 놓지 말 것이요, 5. 주색 낭유(酒色浪遊)하지 말고 그 시간에 진리를 연구할 것이요, 8. 일일 시시(日日時時)로 자기가 자기를 가르칠 것이요, 10. 다른 사람의 그릇된 일을 견문하여 자기의 그름은 깨칠지언정 그 그름을 드러내지 말 것이요, 11. 다른 사람의 잘된 일을 견문하여 세상에다 포양하며 그 잘된 일을 잊어버리지 말 것이요."(〈정전〉 솔성요론 중)

배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배우지 않고서는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가 어렵고, 개별적인 한계 또한 극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그 아는 것에 만족하여 배우기는 게을리 하면서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잘 알지도 못하고 완벽하지도 못하면서 주위에 강요까지 하게 되면 그 삶의 고통이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하지만, 스스로는 알지 못하죠. 실패가 잦고, 주위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를 싫어하며, 스스로도 하고자 하는 일들이 잘 되지 않아 고통스럽죠.

그러므로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평생 배움의 길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두 가지죠. 진리를 연마하는 일과 실제적인 일과 이치에 대한 배움입니다. 스마트폰 사용법은 진리를 연마함으로써는 해결되지 않죠. 마찬가지로 사리에 밝고 사회생활에 능력이 있다고 해서 진리에 대한 안목과 마음의 힘이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일시시로 만나는 인연마다, 일마다 경계마다에서 알음알이를 얻고, 틈나는대로 수양도 하고 세상사 이치에 대한 진리적 안목을 키우게 되면 넉넉한 마음과 걸림없는 지혜의 힘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능력을 갖추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지식이 있다 해서 멈출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시간이 있다고 해서 술과 여색을 쫓아 놀 일도 아니죠.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일일 시시로 보는대로 듣는대로, 타인의 경험을 통해서 조차 우리는 배우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일과 이치 간에 꾸준히 배우는 노력을 평생하게 되면 점차 실수나 실패가 줄어들고, 능력이 생겨나며, 궁극적으로는 생사대사와 영생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나갈 수가 있게 되죠.

시간이 많아 외롭다거나 하는 일이 잘 안 풀려 괴롭다면 우리의 배움의 자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생사대사와 영생의 문제가 자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볼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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