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빛내는 정전

▲ 김준영 교무 / 벤쿠버교당
때때로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류시화 시인의 번역시 제목과 같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우리의 삶은 훨씬 자유롭고 가슴 따뜻하고 편안하지 않았을까 생각될 때가 있죠.

그 중에 하나가 집착에 관한 것입니다. 철이 없을 때에는 '이것 아니면 큰일날 것만 같은 일'이 많았죠. 그래서 가슴을 졸이거나 조바심치고, 때로는 잠을 못 이루는 날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이쯤 흐르고 지난날을 돌아보니,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던 일들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음'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죠.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때때로 마음이 어떤 불편함이나 불안함, 걱정이나 두려움으로 흔들리죠. 그럴 땐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지금 '그 마음은 어떤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냐'하고 말이죠.

아닌 줄 알고, 괴로움의 근원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태생적으로 '어떤 한 편에 집착하는 경향'을 갖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나를 중심으로 보고, 전체의 실상을 보지 못하는 안목의 한계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방식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좋다 싫다 분별하며, 좋은 것은 가지고 싫은 것은 피하려는 욕구를 갖게 되고, 그러한 욕구가 강해지면 집착이 됩니다. 그러니 집착은 크게 내 방식과 주장에 대한 집착,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한 집착, 피하고 싶은 것으로부터 달아나려는 집착 등으로 대별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집착할 것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사 모두 은생어해 해생어은으로 끊임없이 돌죠. 그러니 은혜라고 영원한 은혜가 아니고, 해(害)라고 영원한 해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거죠. 세상의 많은 현상이나 존재들에게는 장단이 공존한다는 말입니다. 한편만 보면 장점만 보이기도 하고, 단점만 보이기도 하지만, 전모를 보면 늘 장점과 단점이 같이 있죠. 게다가 세상사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일부죠. 많은 일들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더라도, 우리 영향권 밖의 일에 대해서는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하고 인내하며 직면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고, 걱정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집착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크게 열고 눈을 길게 뜨고 넉넉한 마음과 밝은 지혜로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내 뜻대로 하려는 집착을 내려놓고 믿고 맡기는 수 밖에 없죠.

그렇게 장단이 공존하고, 집착한다고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닫는다면 집착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심지어 대종사님께서는 '밖으로는 능히 모든 인연에 대한 착심을 끊고 안으로는 또한 일심의 집착까지도 놓아야'한다고 하셨습니다.

"6. 한 편에 착(着)하지 아니할 것이요." 우리 본성을 실현하는 요긴한 방법 중 하나죠. 명심하세요. 무슨 일이든지 집착하면 고통이고, 그 집착을 놔버리면 언제나 은혜이고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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