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광 교무 / 공군사관학교 성무교당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대학원 때 공부했던 노트를 발견했다. 무심히 한두장 넘겨 보는데 정말 내가 썼을 것 같지 않은 감각감상 한편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온전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한 것이다. 온전히 나 자신이 될 때, 그 때 비로소 진리 전체가 되고 법계와 하나가 된다. 수행을 멀리하는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나를 포장해 다른 누군가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삶의 목적을 '누구처럼 되고 싶다'라고 정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면 누구처럼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고, 얼굴이 예쁘고 싶고, 좋은 집, 좋은 차를 갖고 싶다는 경우다. 이러한 바람은 그 순간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데서 멀어지게 할 뿐이다.

이처럼 수행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자기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을 어색해 하며 늘 누구처럼 되고자 한다. 대부분 이들은 대자연의 조화로운 법칙에 따르지 못하고 수많은 오욕과 번뇌를 일으키며 진정한 자신만의 세상을 파괴한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온전한 나 자신을 만나는 그 순간을 맛 본 사람들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평화롭다고 말한다. 햇살은 햇살대로, 비 바람은 비 바람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꽃은 꽃대로 모든 것이 온전한 법신불의 나툼이며, 대자연의 조화다.

나뭇잎이 꽃이 되기를 바라지 않고, 꽃이 나뭇잎이 되고자 몸집을 불릴 것도 없이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진리 그 자체의 자신으로 온전하게 존재한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행복과 평화는 다른 어떤 미래의 일이 아니며, 우리가 그것을 애써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른 존재가 되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며, 다만 지금 이 순간 오직 나 자신이 되는 것에서 느끼고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수행을 통해 나를 관조하고 있는 그 순간 깨어있는 그 자체만으로 좋을 것이다.

하지만 수행함에 있어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나는 수행하고 기도를 잘 한다'와 같은 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스스로 수행한다는 생각에 잡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매일 아침 기도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기도도 안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수행을 안하는 사람은 어리석다는 분별심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더 이상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다. 나와 남을 구분하는 속에서 나를 규정짓는 것이 아닌 분별 비교가 다 끊어진 나 자신이 돼야 한다. 그러자면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하게 깨어있어야 한다. 온전한 비춤, 알아차림이 있을 때 내가 진정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온전한 자신을 찾은 상태에는 분별도 없고 차별도 없다.

내가 정성스러운 수행을 할 때 온 세상과 참된 하나를 이루게 된다. 남들 수행에 대해 참견할 것도 없고, 남들 게으름을 탓할 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수행 안 한다고 안타까워할 것도 없고, 나는 수행 잘 한다는 상을 가질 것도 없다." 과거 짧은 감각감상 한 편이 다시금 수행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준 것 같아 이 글을 공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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