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향토문화와 함께하는 박물관

▲ 우리삶문화옥당박물관은 차로 영산성지에서 백수해안도로를 타고 8km 정도 달리다 보면 나온다.
청명한 가을하늘이 정신을 상쾌하게 한다. 법성포를 거쳐 국제마음훈련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큰 소드랑 작은 소등랑 들판은 황금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예전 바다였던 이 들판은 소태산 대종사가 선진포에서 배를 타고 지나갔던 뱃길이었으리라. 대종사와 구인제자들이 정관평을 막기 전, 영산성지는 어촌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대종사는 밀물과 썰물의 해조음(海潮音)을 들으며 성장했고, 대각에도 어느 정도 영향(耳根圓通)을 미쳤다고 추측된다.

영산성지를 간만에 찾아서인지, 〈소태산평전〉을 완독해서인지 풍경을 마주하는 심상이 다르게 채색된다. 새로 놓인 영광대교를 지나 어느새 목적지인 '우리삶문화옥당박물관'(이하 옥당박물관)에 도착했다. 푸른 잔디밭과 어울려진 박물관은 한폭의 풍경화처럼 잘 정돈돼 있었다. 옥당박물관에서 바라본 앞산(굴수산)의 산세는 마치 독수리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어느 풍수지리학자는 옥당박물관이 독수리의 알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단다.

문화소외 지역에 박물관 개관

원기92년(2007) 9월20일 개관한 옥당박물관은 백수북초등학교 폐교 부지를 매입해 설립됐다. 좌산종법사의 하명으로 시작된 박물관은 영산성지에서 8km 정도 떨어져 있고,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하다보면 모래미해수욕장 다음에 나오는 첫번째 마을 안에 위치해 있다. 영광은 백제 침류왕 원년(서기384년)에 인도 승 마라난타가 법성포(法聖浦)로 들어와 불갑사(佛甲寺)를 창건해 최초로 불법을 전한 곳이다. 옥당박물관은 고대부터 내려온 불교의 고장답게 전통성과 토착문화를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교조 소태산 대종사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수은 강항 선생, 현대 창무극의 창시자 공옥진의 삶을 소개하는 등 영광지역의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한국고고학 유물과 영광출신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영광은 문화소외 지역이다. 이렇다할 문화시설이 많지 않아서 옥당박물관은 작지만 학생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과 문화적인 삶을 내어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박물관 노닐기와 길위의 인문학, 선사시대 발굴 체험하기다. 영광읍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청소년들의 문화 배움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문화가 있는 날'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매마수)에는 교립학교나 원광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기타 학교와 연계해 길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발굴체험을 비롯해 암각화, 문화체험 등을 제공해 누구나 문화적인 삶을 즐길 수 있게 문호를 개방했다.

길위의 인문학으로 답하다

'박물관 길위의 인문학 지원사업'은 신성해 원불교역사박물관장(우리삶문화옥당박물관장 겸직)이 기획한 프로젝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이 사업은 2013년부터 선정돼 민화그리기, 김홍도와 분청사기, 부채에 난초그리기, 암각화 등 체험형 박물관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7년째 근무하고 있는 유덕종 교무(학예사)는 "지난해 진행한 암각화 그리기는 선사시대의 그림을 초벌구이 판에 그대로 따라 그리게 해 호응을 얻었고, 분청사기의 경우도 초벌구이된 도자기에 문양을 새겨 넣도록해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 우리삶문화옥당박물관 신성해 관장(가운데)이 선사시대 유물발굴체험에 앞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의 테마 사업은 '선사시대 발굴 체험 사업'이다.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이 사업은 박물관 전시 내용과 결합되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박물관 앞쪽에 마련된 발굴체험장은 6.6㎡ 정도되는 발굴터가 20개가 마련돼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선사시대의 도자기 등 유물들을 발굴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유 교무는 "선사시대 발굴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미리 학교로부터 예약을 받아 준비하고 있다"며 "발굴 현장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체험장 흙을 파낸 뒤 유물을 묻어야 한다"며 "한 칸에 두 명이 들어가 발굴을 하다가 유물을 찾았을 때 아이들이 매우 기뻐한다. 찾아낸 유물은 개인이 가져가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사시대 발굴체험은 우선 고고학에 대한 이해, 발굴과 고고학, 발굴조사의 원칙을 학예사가 알려준다. 이어 발굴에 사용되는 장비를 소개하게 되는데, 스크래퍼, 꽃삽, 호미, 브러쉬는 기본으로 모자와 장갑은 보조장비로 활용된다. 또한 측량 및 촬영장비도 필요하기 때문에 디지털카메라, 항공측량이 가능한 드론, 해발고도를 측정할 때 사용되는 측량계와 삼각대, 측량용 자, 줄자 등이 동원된다.

발굴순서는 학예사로부터 발굴의 의미와 과정을 청취한 뒤 발굴체험 시범을 보면서 자세와 도구 사용법을 숙지한다. 모자와 장갑, 체험장비를 개인별로 받고, 정해진 발굴 장소로 이동해 실습에 임한다. 발굴 도중에 무엇인가 걸리는 것이 있으면 브러쉬로 주변의 흙을 털어내며 조심스럽게 유물의 여부를 확인한다. 유물의 조각이 나올 때는 주위를 브러쉬로 걷어내며 다른 조작 및 원형의 조각이 있는지를 살핀다. 유물을 다 발굴했으면 보관장소로 이동시킨다. 발굴을 마치면 측량계를 사용하는 법을 배운다. 선사시대 발굴체험은 주로 평일에 학교 수업과 병행해 진행된다. 현장학습이나 진로체험, 소풍 등과 연계해 교사들이 학생들을 인솔해 찾아온다고. 자유학기제가 시행되면서 학교들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유 교무가 귀띔한다.

▲ 우리삶문화옥당박물관 입구에 서 있는 유덕종 교무.

박물관 노닐기

KB국민은행과 함께하는 박물관 노닐기는 지난해부터 옥당박물관이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다. 배당된 인원이 꽉차서 예약이 힘들 정도다. 유 교무는 "아이들 반응뿐 아니라 선생님들의 만족도가 높은 프로그램이다"며 "영광지역을 넘어 광주에서도 찾아온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삶의 형태를 박물관에서 견학한 뒤 유물발굴 체험을 하면 마치 숨은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호기심을 나타낸다. 발굴된 토기를 각자 집으로 가져가게 되면서 체험의 기쁨은 배가 된다"고 설명했다.

영광지역 유물이 한 자리에

옥당박물관은 우리삶문화실과 옥당인물실, 융무당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삶문화실은 구석기시대의 찌르개, 주먹도끼, 청동기시대의 청동도끼, 붉은간토기, 고구려시대의 연화문와당, 삼국시대의 마형토우, 고려시대의 금단추, 조선시대 백자합, 융무당 잡상 등 2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어 공부와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특히 우리삶문화실 입구에는 마한시대의 대형 옹관이 전시돼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옥당인물에는 영광 출신 인물 이외에도 '한국의 화폐'가 전시돼 있어 관심을 끈다. 고려시대의 화폐 동국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와 조선시대의 화폐 조선통보, 상평통보(숫자전·오행전·당백전)가 있고, 대한제국 시대의 근대화폐 일원은화, 조선은행 금권지폐, 모자상(개갑 백환권) 등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잡는다. 옥당박물관에는 융무당(隆武堂)이라는 한옥이 기세 있게 서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융무당은 고종5년(1868)에 신무문 밖 북악산 기슭의 경복궁 후원지역에 중건된 한옥이다. 국가의 무술대회나 군사훈련을 시범하던 건물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철거돼 용광사(龍光寺 현 서울교당)로 이전된다. 해방 이후 교단에서 용광사를 불하받아 융문당(隆文堂)과 융무당을 법당과 생활관으로 사용하다가 하이원빌리지가 신축되면서 2007년 융문당은 영산선학대 앞으로, 융무당은 옥당박물관으로 이전하게 됐다.

박물관의 과제

옥당박물관의 과제는 시설과 인력의 보강이다. 신성해 관장은 "옥당박물관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물 관리나 인력이 보강돼야 한다"며 "현재는 유덕종 교무 혼자서 옥당박물관을 관리하고 있는 현실이다. 박물관에 무슨 일이 있으면 익산에 있는 관장이 내려가 인력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문화학교 등 좋은 콘텐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력이 부족하다"며 "관장이 재가교도여서 그런지 교단은 관심이 적다. 무엇을 고쳐달라고 요청해도 쉽지 않다. 연간 4만여 명이 다녀가는 옥당박물관을 원불교 정체성 확립하고, 교화에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을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더불어 바닷가 옆이라 해풍으로 인한 건물 부식과 태풍으로 수장고 건물외벽과 지붕이 날아갔다고 하소연하며 시설 보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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