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자의 삶

▲ 이형열 원무 / 여수교당
고향이 전라남도 보성군 미력면(구 지명 미륵면) 도개리로 '미륵이 도를 여는곳'의 뜻을 가진 곳이었지만 내가 태어난 해까지 교회, 절 등 종교시설이라곤 하나도 없는 종교 청정 지역이었다. 마을에 당골네가 들어와도 몇년을 못 버티고 자리를 팔고 나가는 무종교 고장이다보니 신앙이란 것에 대한 개념은 없이 자랐다.

원기86년 부모님은 위로 딸 셋에 드디어 아들을 얻자 작명소에서 "사주에 아들 성깔이 아주 드세니 불공을 많이 하라"는 말에 산후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산속 절로 갈까 하다 집 옆블럭 같은 골목에 있는 원불교가 있어 들어간 곳이 여천교당이었다.

그 후 나는 10여 년을 한골목에서 지나치며 살았지만 도통 외관이 변하지 않은 모습에 "이곳은 교도들 등골 휘게는 안하는 곳이겠구나"고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유세명 교무님이 차한잔 나누면서 "집이 가까우니까 교당에 일요일날 놀러 오라"는 당부에 '이곳은 어떤곳일까?'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나가보기 시작했다. 교도라고 10여 명 정도의 소박한 교당에 교무님은 여타 종교인과 달리 극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수 없는 조용하고 따스한 미소를 가지신 분이었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교당에 놀러 가듯 법회에 참석하며 적응해 갔다.

그런데 마음 속으로는 재림 예수라 표방 하는 종교와 원불교처럼 새부처님이라 내세우는 종교에 대해서는 이단같이 보여진게 사실이었다. 원불교도 그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우연히 원티스 프로그램 오류를 수정하다가 일부러 볼려고 본것은 아니지만 빈궁하기만한 교당 재정 상황에 놀랐다. 교무님 설교중 3년동안 "돈 내라. 왜 저번주 안나왔는냐? 사람 데리고와라"는 말씀 한번도 못들었음을 상기하며 "이 종교 참 재미있는 종교구나. 내가 생각했던 여타 종교와는 다른데? 지금부터 한번 제대로 공부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3년쯤 다니면서도 "한번 믿어볼까"하며 결심을 세우던 중, 어느 날 불교방송에서 성철스님이 설법하는 것을 보게됐다. "불교는 불생불멸이다." 단 한마디 하고 법장치고 법좌를 내려 오는 파격적인 모습에 놀랐다. 다시 법좌에 올라 '불생불멸'에 대해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질량보전의법칙, 에너지보전의법칙 등 현대 과학 물리학을 총동원해 이 세상은 불생불멸로 이뤄져있고 변화하는 이치를 설명해 주시는데 그 순간 교무님께서 설해주신 내용과 일치하는게 있다는걸 발견했다.

얼른 교전을 뒤져 <대종경>서품1장 '생멸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를 일러 주셨음을 알고서 "아~ 불교가 불생불멸이라는데 우리 대종사님도 대각일성이 똑같지 않은가? 그래 제대로 깨치신 분 맞다. 새부처님이 확실히 맞다"고 비로소 원불교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불교의 성철스님 설법으로 대종사님이 확실한 부처님임을 믿게 되고 정식 원불교 교도가 된것이다.

믿음이 생기니 교무님께 "교당에 주보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문의 드렸다. 설교 제목과 공고 내용만 주시고 A4용지 앞뒤를 다 채우고 꾸미는 일을 도맡아 하게 되면서 교전을 수없이 뒤지고 뒤졌으니 이것이 공부의 큰 기초가 됐다.

두번째 모신 이법전 교무님은 억척에 적극성으로는 두번째 가라면 서운할 정도였다. 교무님을 모시면서 교화에 공부에 재미와 자신감이 생긴 나는 자칭 '미친특신급'으로써 걸림없이 열심히 교당 활동을 했는데 이것도 나에게 깊은 원불교 인연으로 느껴졌다.

처음은 조용하고 기다리시는 유세명 교무님 덕분으로 원불교에 적응하게 됐고, 공부에 재미붙인 미친 특신급이였을 시기에 매우 적극적인 이법전 교무님 덕택에 원불교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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