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 저술로 읽는 교사>

▲ 〈원광〉 창간호의 표지와 제호.
〈원광〉은 원기34년(1949)에 창간된 원불교의 기관지이다. 이를 발간하기 위해 원광사가 설치됐으니, 오늘날의 원광사는 당시 〈원광〉를 발간하기 위한 공무소였다. 교단의 출판물이 늘어나면서 원불교출판사를 등록하고 이를 독립시켰으니 원불교 출판문화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교단의 기관지는 원기13년(1928)의 〈월말통신〉, 원기17년(1932)의 〈월보〉, 원기18년(1933)의 〈회보〉로 이어지는데, 〈회보〉가 원기25년(1940) 일제의 억압에 의해 폐간된다. 이후 원기31년 (1946) 금강청년단에 의한 〈금강〉이 창간되지만 뒤를 잇지 못한다. 따라서 교단에는 원기25년부터 원기34년까지 10년 기관지가 없는 셈이었다. 이 시기에 대종사의 열반, 전쟁과 해방, 새로운 국가건설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으므로, 교단의 정체성 확보나 대사회적 관점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만큼 〈원광〉의 창간은 교단발전에 하나의 이정표와 같은 존재였다. '원불교' 교명선포와 관련된 대표적인 문화사업이요 대사회적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제1대 성업봉찬사업과 관련하여 대종사 법문을 원하는 교단정서가 감안된 것이다. 창간호는 원기34년 7월 발간으로, 편집 겸 발행인은 이공주 종사였다. 국판 100쪽에 사설·대종사법설(금강산과 그 주인)·정산종사법설(백범선생 서거에 대하여)·교리강론·문예작품·교단소식·교가 등을 실었다. 제호는 정산종사의 휘호인 '○ 일원지광 편조시방(一圓之光 遍照十方)'이 이를 대신한다. 원불교 교법이 시방을 두루 비치는 광명이 되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원광〉은 교단발전과 궤를 같이 해왔다. 창간호 발간 후 1950년 한국전쟁 중에 휴간했다가 원기36년(1951) 복간한다. 원기54년(1969) 국가기록물에 계간으로 등록하고, 원기69년(1984) 월간으로 바꾸고, 월간원광사로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기93년(2008)년부터 사무실을 서울로 옮기고 교도들의 신행(信行)을 이끌어가는 종합잡지로서의 위상을 돈독히 했다. 오늘의 편집에는 교단의 움직임과 함께 재가출가 교도들의 신앙·수행과 관련된 글과 사진자료를 풍성히 담고, 원불교 문예의 산실 역할을 겸한다. 이 월간 〈원광〉이 신문인 〈원불교신문〉과 더불어 교단기관지를 대변해오고 있다.

양현수 교무 /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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