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들의 공간'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바라나시 책골목엔 인디아, 연금술, 신화들과 세계의 작가들, 세계문학 등 3천여 권의 책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중앙 메인 공간에
인디아, 티벳, 아메리카인디언,
이집트, 유럽의 현자들이 있다.
동과 서가 동시에 똑같이
한결같이, 하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코너.

영원은 오직
현재 안에 완벽히
완전히, 스며들어 있음에
영원은 '여기'에 있다.

"하나의 봉우리를 향해 오르는 다양한 방법들이 이룬 일종의 정신의 지도. 유사 이래 인간이 추구한, 여러 현인, 작가, 철학자들이 모여 이룬 일종의 '정신의 공간 지도'를 만들어 내려는 게 '조용한' 최종 목표다"고 말하는 그는,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의 책지기 권혜진(38)씨다.

"문에 들어서면 주제별로 나뉜 공간 속 책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훑어나가다보면 어쩌면 하나의 주제에 당도하게 될지 모른다"는 게, 그의 '작은'입장이라고 말한다. '조용한' 최종 목표. '작은' 입장.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그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튼실하고 뿌리 깊은 나무의 근간이 되는, 작고 여린 새싹 같은 그를 제주에서 만났다. 그가 책지기로 있는 '바라나시 책골목'에서.

'책들의 공간 이야기'

그의 표현대로라면, 바라나시 골목처럼 '바라나시 책골목'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길쭉하다. '책들의 공간'이라는 표현이 썩 잘 어울리는 그곳엔, 인디아, 연금술, 신화, 실존철학들이 모여있고, 세계의 작가들과 세계문학들도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인디아와 동서양의 연금술 철학이 있는 또 다른 공간. 그 공간에는 '어쩌면 인디아 코너 다음으로 그가 아낀다'는 <실존파>들도 한 데 모여 있다. "인간, 그리고 자기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가를 향해 치열하게 쓰고 살아간 작가와 시인들이 이룬, 그야말로 제가 한없이 배우고 도움을 받은 인류의 귀한 선배님들이죠."

그가 말하는 인류의 귀한 선배들은 카프카, 랭보, 도스토예프스키, 사르트르, 카뮈, 보들레르, 샐린저 등 특히 '실존'을 강조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디킨슨 시선, 애너벨 리, 디오니소스 송가, 루바이야트, 예지, 천국과 지옥의 결혼 등 존재를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시어(詩語)들을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공간. 작가 이전에 어쩌면 제일 먼저 우주와 인간, 그리고 삶을 노래한 인류 최초의 이야기꾼들. 바로, <신화>와 <종교>가 모여 있다. 그리고 중앙 메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간에 인디아, 티벳, 아메리카인디언, 이집트, 유럽의 현자들이 있다. 동과 서가 동시에 똑같이, 한결같이, 하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코너. 그는 "미로 같이 구불구불 수천 권들이 모여 있지만 사실상 내가 탐구한 책들의 질문은 거의 한 점에서 만났다"고 말했다. 유사 이래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한결같이 이어온 단 하나의 질문, '나는 무엇인가'.


▲ 북카페 책지기 권혜진씨는 일상우주여행가다.

'나는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과 비교해 조금 덜 벌고 덜 쓰더라도, 제주에 내려와 이 작은 보금자리를 택한 건, 결과적으로 10대 때부터 나를 이끌어왔던 단 하나의 모티브였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찬찬히 돌아보며, 내가 지금껏 읽고 배운 선배들의 '샨티(Peace)' 정신을 내 삶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끌어들이려는 아주 '작은' 선택이었다면 선택이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 앞에도 '작은'을 붙였다. 작고 작은 내면의 소리 하나까지, 세심하게 들을 줄 아는 이의 깊은 배려심이, 그가 사용하는 언어 끝에 달렸다.

그가 좋아하고 힘 입었던 니체나 조셉캠벨은 가슴이 이끄는 심적 샨티를 따라 떠나는 존재적 모험이었다. 안정이 보장된 콜롬비아 대학의 꽉 막힌 시스템에 과감히 안녕을 고하고, 자기를 이끄는 '가슴의 언어'에 충실했던 조셉캠벨. "자기의 블리스(bliss)를 찾아가라, 자기 내면의 지복을 느끼는 감정, 축복을 찾아가라. 자신이 끌리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더 큰 성장과 변화를 위해 진정 당신이 가야할 신호이다." 그가 조셉캠벨의 말을 대신 한다.

캠벨이 말하는 '블리스'란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느낌,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어떤 것을 하고 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다. '충만한 존재감'을 느끼며 사는 삶, 그가 제주에서 바라나시 책골목의 책지기가 된 '작은' 선택이자, 자기 내면의 '조용한' 목소리다.

▲ 바라나시 책골목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길쭉하다.

일상여행자의 낯선 하루

지금부터는 그의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상 우주 여행자. 그는 일상을 여행하는 '일상 우주 여행가'다. 그리고 '익숙한 공간에서 시작하는 설렘 가득한 일상 우주 여행'은 <일상여행자의 낯선 하루>라는 그의 책에 친절하게 안내돼 있다.

"유럽과 인도차이나 여행을 통해 얻었던 최대 수확은 달콤한 여행의 추억도, 커다란 인생의 깨달음도 아닌, 바로 '여행자의 시선'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무엇보다 얼마나 깊이 보고 존재를 체험하느냐는 얼마나멀리 여행하느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성검과도 같은 여행자의 '시선'만 있으면 집 앞 골목에서도 앙코르와트의 일몰을 볼 수 있고, 동네 커피숍에서도 헤밍웨이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여행이다'며 그는 일상 우주로 떠날 준비를 말한다.

그의 말대로 '여행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일상에 매여 있던 정신의 혁명'이고, 시선의 변화, 습관의 탈피, 정신의 자각인 '일상 혁명'인 셈이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파리에 가지 않고 파리지행 즐기기, 티베트에 가지 않고 오체투지 소울 도전, 인도 고아에 가지 않고 히피 누리기'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 우리가 호흡하는 지금 이곳, 여기에서.

다시 바라나시 책골목 이야기. 그가 만든 '작은' 보금자리에선 인도 짜이를 마실 수 있다. 라씨와 인디아 커피도 손색이 없지만, 이곳에서는 인도에서 마시는 것보다 더 나은 짜이가 제격이다. 짜이를 마시면서 보는 오쇼 젠 타로. 오쇼의 타로카드는 점을 치는 도구가 아닌 명상카드에 가깝다. 해서, 자신의 현 마음 상태를 읽는데 놀라울 만큼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현재'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그가 전하는 '착한' 선물. 물론 무료다.

문득, 바라나시 책골목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의 선물 같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라나시 책골목을 나오는 길, 하루하루가 곧 영원이라는 현자들의 말을 다시금 새기고 있다. 영원은 오직 현재 안에 완벽히, 완전히, 스며들어 있음에 영원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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