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은 병든 사회를 만드는 세 번째 원인을 '의뢰의 병'으로 지목하면서 "수백 년 문약(文弱)의 폐를 입어 이 나라 사람에게 더욱 심하다(〈대종경〉교의품34)"고 했다.

국운이 풍전등화의 상황인 1900년대 신채호 등이 망국의 원인으로 꼽은, 문(文)을 숭상한 유교 교육이 한국의 군사적 용맹성에 악영향을 끼쳐 국가가 약해졌다고 보는 '문약망국론'처럼 문숭(文崇)을 문약의 주된 원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신민설〉을 쓴 양계초(梁啓超, 1873~1929)는 유교 외에도 '패도정치(覇道政治)'에 주목했다.

패도정치란 무력으로 권력을 얻어 힘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말하는데, 양계초는 '무력으로 타인의 것을 빼앗았으면 타인 역시 무력으로 나의 것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하여 자루 끈을 단단히 매고 금궤에 자물쇠를 굳게 채우는 정책을 택해 힘 있는 자들을 괴롭히고 떠나도록 하기에 힘쓴다(〈신민설〉제17절)'고 했다.

군사 쿠테타를 2번이나 경험한 한국역사는 어쩌면 패도정치의 역사라 볼 수 있다. 무력을 일으켜 정치권력을 장악한 뒤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이 자라지 못하도록 간첩몰이, 언론통제, 시민학살, 각종사찰 등으로 국민을 순종시키고 길들이는 역사였다.

더욱이 일제통치와 한국전쟁 이후 뼈져리게 느꼈을 법한 국방의 자주력도 반세기 넘도록 미국에만 의존하다가 '사드배치사태'까지 초래한 것을 보면 오늘날 '의뢰의 병'이 단순한 개인 문제를 넘어 사회·정치적으로 얼마나 큰 문제로 작용하는지 아니 생각할 수 없다.

성주·김천과 서울 국방부 앞에서 매일 외치는 '한반도 평화'와 촛불시위가 '무관심과 의뢰심으로부터 국민 모두가 깨어나야 한다'고 들리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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