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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의 법문 공양 이야기
2. 나의 법문 공양 이야기
  • 이형열 원무
  • 승인 2016.10.28
  • 호수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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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열 원무 / 여수교당
 
나는 매일 천여 명이나 되는 지인들에게 문자로 법문공양을 해오고 있다. 원무로서 나만의 교화법이다. 문자 보내는 데에도 원칙이 있다. 법문 문자는 40자 이상을 넘지 않는다.

또 점심시간인 12시~1시에 맞춰 보낸다. 원무로서 교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장에서 근무하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이 볼 때에도 공사 구분 못하고 종교에 빠진 사람처럼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자로 법문공양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8년째 되어간다. 처음에는 단원들에게만 법문을 보냈는데 3년쯤 되니 1천여 명까지 늘게 됐다. 〈대종경〉, 〈정산종사법어〉, 〈대산종사법어〉를 순차적으로 매일 한 편씩 꾸준히 보내고 있다.

"형열님도 원무 해야지?" 원기89년 유세명 교무와 함께 어린이여름훈련을 모사금해수욕장에서 진행하고 있을 때 당시 여수교당 최세중 교무가 대뜸 던진 말이다. 원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신입교도에게 원무를 하라고 하니, 나는 '교당을 오래 다니다 보면 으레 원무를 해야 하는가'보다 하며 살았다.

신앙생활이 늘 좋게만 풀렸던 것은 아니다. 여천교당 교도가 점차 늘고 교화에 자신이 붙을 무렵 김윤진 교무가 부임했다. 당시 교당 확장 필요성이 제기됐는데 나는 토지매입에 적극 개입하게 됐다. 하지만 교도들과 교당 토지 매입 문제로 서로 의견차가 있다가 틀어지는 일이 생겼다. 나는 여기에 실망한 나머지 석달 동안 교당을 쉬고서 옆 교당인 여수교당으로 출석해버렸다.

여천교당 김윤진 교무는 이런 나의 마음과 진정성을 이해해줬다. 교무님의 배려로 여수교당으로 교적을 옮겼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계속 여천교당에 출석하고 있다. 그래도 여천교당 교도들과 늘 은생어해로 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수교당에서는 고 이전원 교무의 포용과 성인관, 김제덕 고문의 따듯한 지도, 그리고 용타원, 연타원, 중타원의 속 깊은 따뜻한 관심으로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또 김관도, 윤성진 중앙과 많은 교도들의 응원 속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주도광 회장과 김제국 원무를 통해서는 왕성한 활동력을 보고 배웠다.

이렇게 큰 은혜 속에 살다보니 원기100년 이명륜 교무가 "원무 서원해라"는 한 마디에 두 마음없이 원무 서원을 해버린 것이다.

원무가 직장 교화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실제 직장 교화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루 일과에서 직장 동료와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지만 종교를 소재로 이야기하는 게 터부시 되는 시대가 돼버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공격적인 개신교 포교활동의 여파라 할 수 있다.

요즘은 개신교인들도 직장 내에서 먹혀들지 못하니 전도를 못하는 상황이 됐다. 원불교 교화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동료간에 왜 못하냐?"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현 사회가 이미 그렇게 변해 버렸다. 지금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교법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

지인들에게 법문 문자를 보내다보면 "어렵다", "풀어서 해주면 좋겠다"는 답장이 온다.

그러면 다시 카톡으로 길게 보낸다.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친구에게는 "'안다니면 지옥간다고 겁박 주고, 다니면 천당가고, 공부도 안 했는데 합격한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이 전혀 없지 않은가?"하고 법문을 보내주면서 알려 주면 "그건 그래" 하고 수긍하곤 한다.

다행인 점은 개신교인들이 성경 문자를 보내면 간혹 사람들이 수신 자체를 차단해 버리지만, 우리 법문은 보편타당해 현재까지 120여 명의 직장동료가 5년 동안 법문 문자를 잘 받아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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