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 교수의 현대건축이야기
어린이대공원 정문으로 들어가 음악분수 오른쪽 뒤편에 '꿈마루'라는 건물이 있다. 원래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있던 서울컨트리클럽(서울CC)의 클럽하우스로 197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하지만 1973년에 70만 제곱미터의 골프장 부지에 어린이 대공원이 만들어지면서 클럽하우스 건물은 제대로 사용되지도 못하고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으로 용도가 바뀌게 되고, 거의 40년 간 전시장과 식당과 관리사무소 등으로 전전하다 몇 년 전에야 꿈마루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실 이곳의 골프장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원래 이 자리에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비 순명황후 민씨의 능이 있었는데, 1926년 순종이 승하하면서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홍릉에 같이 합장되면서 비워지게 되자 골프광으로 유명했던 영친왕이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군자리 골프장'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골프장의 운명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이 격화되면서 다른 골프장들과 함께 비상용 활주로 확보를 위해 모두 폐쇄됐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완전히 황폐화됐다. 1954년이 돼서야 군자리 골프장은 서울컨트리클럽(서울CC)로 이름을 바꿔 다시금 개장한다. 그러다 1973년 골프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어린이대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서울컨트리클럽 클럽하우스에서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으로의 변화를 버텨낸 이 건물의 생명력도 참 대단하다. 어린이대공원 측은 노후한 교양관 건물을 리모델링하기보다는 철거하고 새로 신축할 예정이었다. 2009년 초 어린이대공원 측은 교양관 건물을 헐어버리고 새 건물을 짓기 위해 설계 용역을 추진하는데, 심사 중에 원래 건물이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 나상진(1923~ 1973)이 설계한 우리나라 최초의 클럽하우스 건물임이 확인되면서, 다시 원래 건물을 살리기로 한 것이다.
그 운명만큼이나 리모델링 방식도 독특하다. 건축가 조성룡은 기존 구조물의 많은 부분을 비워내면서 건물에 쌓여있는 다양한 '시간'들을 다시 살려낸다. 교양관으로 사용하면서 막힌 벽과 지붕을 모두 걷어내고 원래 클럽하우스의 구조를 최대한 다시 드러냄으로써 숨겨져 있던 '클럽하우스의 시간'을 다시 살려내는가 하면, 새로 깔끔하게 마감하지 않고 수십 년간 건물의 벽과 천장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그대로 둠으로써 '교양관의 시간'을 보존한다. 새로 들어가는 관리사무소와 전시공간과 북카페는 기존 건물의 재료와 대비되는 투명한 유리와 붉은 벽돌을 사용해 새롭게 시작하는 꿈마루의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탈바꿈한 꿈마루는 '시간의 여행'을 떠나는 출입구 같다. 꿈마루를 걸으면,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의 유릉이 있던 시간으로 갈 수도 있고, 영친왕이 망국의 아픔을 잊기 위해 골프를 치던 군자리 골프장의 시간으로 갈 수도 있고, 박정희 대통령이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골프를 치던 서울컨트리클럽 클럽하우스의 시간으로 갈 수도 있고, 육영수 여사가 대한민국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위해 개원한 어린이대공원의 시간으로도 갈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꿈마루의 시간'으로도 갈 수 있다. 어느 시간으로 가느냐는 이곳을 찾은 수많은 '나'의 마음에 달려있다.
홍익대학교 건축학부
조한 교수
wonnews06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