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권 교도 / 여의도교당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일까? 뭐니 뭐니 해도 죽음의 공포가 아닐까 생각된다. 요즘 부쩍 죽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살면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아파본 사람들은 더하다.

왜냐하면 이승을 떠날 때 죽음의 공포를 느낄 것인지 아니면 웃으며 떠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생사대사라 했다. 지난 30여 년 간 나름대로 죽음에 관한 수행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래도 불의의 사고, 건강 악화 등 다양한 계기를 통해 죽음에 직면할 때 과연 나에게 죽음의 공포가 없을까? 한 없이 약한 것이 인간이다.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첫째, 이 몸을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사은의 공물이라 했다. 내 것이 아닌데 왜 이 몸뚱이에 집착할까? 내 것이 아깝지 남의 것은 그리 아깝지 않다. 그러므로 평소 계속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몸의 집착에서 벗어나면 별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둘째, 지금 여기에 몰두하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 생각 속에 있는 것이다. 죽음은 미래에 있는 것이지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는 것이지 우리는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나만 죽는 다면 어느 정도 죽음을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죽는 것인데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을 미리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냥 현재에 몰두하는 것이다. 일을 하면 일, 잠을 자면 잠, 음식을 먹으면 음식 먹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끌어와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미 죽을 때까지 <덕화만발>을 통해 세상을 맑고 밝고 훈훈하게 만드는데 몰두하기로 작정한지 오래다. 죽을 때까지 이 외의 일은 생각지 않는다. 이 일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면 웃으며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셋째, 죽음도 인과의 법칙에 따라 오는 것이다. 불생불멸의 법칙과 인과응보의 법칙이 우주의 진리다. 죽음도 인이 있고 연이 있으며 과가 있는 것이다. 순리대로 올 것이 온 것으로 알면 두려움이나 아쉬움은 없다. 죽음을 거부하면 추해지고 자칫 악도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죽음도 업보라면 달게 받는 것이다. 이 진리를 알면 죽음의 공포는 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준비를 소태산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1. 정신수습으로 공부를 삼는 것이다. 열반이 가까워 오면 만사를 다 방념하고 오직 정신수습에 집중하는 것이다. 태어나 죽지 않는 사람은 결코 없다. 오직 정신통일을 공부로 삼는 것이다.

2. 미리 유언을 해두는 것이다. 미리 이 유언을 처결해두지 않으면 정신이 산란해질 수 있다. 미리 처결하여 그 관념을 끊어서 정신통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3. 원수 맺은 일이 있으면 풀어야 한다. 평소에 혹 남에게 원한을 품었거나 원수를 맺은 일이 있으면 그 상대자를 청하여 될 수 있는 대로 전혐을 타파하는 것이다. 만약 그 상대자가 없으면 혼자라도 그 원심을 놓아버리는 데에 전력을 다 기울이는 것이다. 만일 마음 가운데 원진을 풀지 못하면 내생의 악한 인과의 종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4. 모든 착심을 여의는데 전력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되 애욕 경계에 집착하여 그 착심을 여의지 못하면 자연히 참 열반을 얻지 못한다. 그 착 된 바를 따라 영원히 악도윤회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5. 청정일념을 챙기는 것이다. 최후의 시간이 이른 때에는 더욱 청정한 정신으로 일체의 사념을 버리고 선정 혹은 염불에 의지하여 영혼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그리하면 평소에 비록 생사진리에 투철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능히 악도를 면하고 선도에 돌아올 수 있다.

어떠한가? 이 다섯 가지만 잘 실행하면 죽음에 다다라 종종걸음을 치지 않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다섯 가지는 죽음에 이른 사람만 행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평소에 근본적으로 신심이 있고, 단련이 있는 사람에게 더욱 정진하라는 소태산 부처님의 간절한 부탁이다.

만일 평소 신심과 단련이 없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 이 다섯 가지를 실행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 가르침을 평소부터 연마하여 일을 당하여 한탄이 없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생사의 일이 크다.

수행 없이 죽음을 맞이하면 악도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수행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바로 지금 수행을 하지 않으면 때는 이미 늦다.

우리가 열반을 앞두고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보물이 있다. 하나는 공덕이요, 둘은 상생의 선연이다. 그리고 셋은 청정일념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청정일념이라 했다. 아무리 공덕을 쌓고 상생으로 선연을 맺었다 하더라도 평소에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것이 다 아상이나 착심으로 화하기 쉽게 된다. 공수래공수거라 했다. 이 원리를 철저히 깨달아 우리가 최후의 일념을 청정히 하는 것이 제일 큰 보배인 것이다.

우리 평소 수행을 통하거나 죽음에 다다라 성불제중의 서원을 세우고 청정일념에 귀의하면 생사의 길에서 가나오나 선도에 돌아와 영생에 복락을 누리고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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