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소진 교도 / 북광주교당
딸아이 대입과 취업으로 시작한 기도
1년간 간절한 기도가 합격 결과 얻어
남편과의 불화, 기도와 고백으로 풀다

기도생활과 기도의 위력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의 남편은 일주일에 3~4일은 신문보다 늦게 들어오는 일이 허다해 늘 마음을 기댈 곳을 찾았다. 그래서 교회도 다녀보고, 절에도 가봤지만 마음이 맞는 곳이 없었다. 신앙생활을 쉬고 있을 때 당시 여성회장이였던 류성경 회장님을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됐다. 류 회장님은 나에게 원불교에 다녀볼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입교는 했지만 교당에 갈 마음은 선뜻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딸아이가 고3 수험생이 되면서 엄마로서 무언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교당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한두 번 가다 보니 어느새 교무님의 설법이 귀에 쏙쏙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다른 신앙을 찾으려고 이곳저곳 기웃거리지 않고 원불교를 열심히 다녔다. 나는 무작정 좋다고 다니는 것보다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법회 무결석을 목표로 3년간 지켜냈다. 그때쯤 딸아이는 대학4학년으로 취업 준비를 앞두고 있었다. 딸아이는 하루에 3~4시간씩 자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불안하고 엄마로서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우리 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물론이고, 목사, 스님, 사주보는 사람들도 온다. 하루는 사주보는 사람에게 딸아이의 취업을 물어보니 3~4년 경험삼아 시험을 보다보면, 그 후에는 시험에 붙을 거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불안한 나는 기도를 해보기로 했다. 분명 기도의 위력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하루 3~4시간 밖에 못 자는 딸아이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다고 생각되니 매일 아침 108배를 시작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1년 동안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3~4년은 운이 없다던 딸은 졸업하던 해에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했는지 모른다.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니까 기도의 위력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그 뒤로는 더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교당에 다녔고, 교당에 오가는 길이 무척 행복하고 즐거웠다.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가서 진로를 찾았고 걱정 없이 지내는데 문제는 늘 남편이었다. 일주일 중 3일은 남편이 이해되다가 이내 미워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원불교 신앙을 하는 공부인이니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산다'며 나를 위로하며 살았다.

그러다 올해 여름에 몸에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있을 때 갑자기 몸이 이상해져서 응급실에 두 번이나 실려 갔다. 그때부터 내가 이상해졌다. 혼자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이 두렵고,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너무 힘들어 죽을 것만 같았다.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고 남편이 없으면 무서웠다. 병원을 여기저기 다녀 봐도 의사는 공황장애는 심하지 않지만 가슴에 화병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병을 나을 때까지 나 좀 도와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삼밭재 기도터에 가고 싶다고 했다. 교당 교무님에게 부탁을 드리니 흔쾌히 승낙하셔서 2번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남편과 함께 다녀왔다. 삼밭재에 올라 기도를 하고 독경을 하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편이 옆에 있는데도 나는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 속은 좀 시원해진 듯했지만 나의 증상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아침 심고시간에 법신불 사은에 매달렸다. 하루빨리 이 증상이 없어지기를 기도하며 이 경계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도 하고 병원 약도 복용했더니 한 달 정도 지나니 숨쉬기도 편해지고 잠도 잘 수 있게 됐다. 몸이 좀 회복되니 남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 곁에서 소리 없이 살림을 도와주고, 정성껏 돌봐주고 있는 사람이 남편이었다.

그때서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그동안의 나의 마음을 고백했다. "지금까지 내가 제일 미워한 사람은 당신이고, 제일 원망했던 사람이 당신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프고 보니 제일 필요한 사람이 당신이고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당신이었다. 그동안 원망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남편은 알았다며, 그렇게 미워하며 살았는지 몰랐다며 자기가 오히려 더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제 아침 심고를 올릴 때에 남편에 대한 참회기도를 한다. 기도를 할 때면 이상하게 눈물이 나고, 며칠은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울며 기도를 했다.

생각해보면 법신불 사은이 나에게 이런 시련을 준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좀 제대로 하라는 뜻이 아닐까. 지금까지 남편을 얼마나 미워하고 살아왔는지, 무슨 잘못을 저지를지도 모르고 우둔하게 살아온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라고 준 시련 같은 생각이 들었다.

대종사의 노부부 며느리에 대한 실지불공의 예화처럼 나도 남편에게 실지불공을 하며 교당도 함께 다닐 수 있게 노력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기도도 열심히 하고 몸도 주위도 돌아보며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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